축구
[마이데일리 = 전주 안경남 기자] ‘최투지’로 불리는 최철순은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경기가 3-0으로 끝난 뒤 믹스트존에서 센터백(CB)이었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웃었다. 변칙 스리백의 한 축을 담당한 최철순은 아드리아노를 맨투맨으로 봉쇄했다. 현대 축구에서 1대1 수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프로무대에서 의도적인 맨마킹을 지시하는 감독은 많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에 따라 얼마든 유용한 전술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철순의 센터백 변신은 서울전 완승의 핵심 키워드였다.
# 포메이션
경기 전 최강희 감독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 경기는 박진감 있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서울의 스리백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전북은 최철순이 센터백 자리로 이동하며 변칙 스리백으로 변신했다. 선발 명단만 놓고 보면 전북의 포메이션은 4-1-4-1(또는 4-2-3-1)처럼 보였다. 기존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최철순이 김형일과 김기희 사이로 들어오면서 3-4-3(또는 5-3-2)으로 바뀌었다. 좌우 측면 윙백에는 한교원과 박원재가 자리했다. 한교원은 오른쪽 날개로 경기를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방으로 내려왔다. 공격의 연결고리는 이재성과 루이스였다. 이재성은 이근호가 위치한 왼쪽으로 이동해 공간을 찾았고 루이스는 드리블과 패스를 통해 이동국을 지원했다.
최용수 감독은 예상대로 스리백을 꺼냈다. 3일 전 포항과의 홈경기와 비교해 세 자리가 바뀌었다. 박희성, 몰리나, 심상민 대신 윤일록, 다카하기, 차두리가 선발로 나왔다. 나머지 포지션은 변화가 없었다. 무릎 부상 중인 박주영은 전북 원정에 나서지 않았다.
#전반전
전북은 점유율을 포기했다. 대신 수비라인을 내리고 역습을 통해 서울의 뒷 공간을 노렸다. 그로 인해 서울은 의도치 않게 높은 점유율과 함께 전체적인 라인이 올라갔다. 전북은 초반에 수비에서 다소 혼란을 겪었다. 최철순이 아드리아노를 쫓는 과정에서 김형일, 김기희와 포지션이 겹치거나 뒤섞였다. 전반 10분 장면이 전북 스리백의 혼란을 말해준다. 최철순이 아드리아노를 압박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아드리아노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의 윤일록과 2대1 패스를 통해 전북 수비를 뚫었다. 서울에겐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다. 아드리아노가 선제골을 넣었다면 이날의 결과는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최철순은 아찔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이 아드리아노를 맨투맨으로 잡으라고 하셨다. (김)형일형과 (김)기희랑 상대가 바뀌면 빠르게 바꾸자고 말을 했는데 막상 경기장 안에선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반 초반에 정신이 없었다. 상대를 알아보고 덤볐어야 했는데 습관적으로 달려들었다 뚫렸다. 아드리아노에게 실점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경기 흐름이 바뀐 건 전반 19분이다. 이재성이 루이스와 패스를 주고받은 뒤 이동국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했다. 그리고 골키퍼 가랑이 사이로 득점에 성공한 이동국은 슈퍼맨 세리머니로 선제골을 자축했다. 서울의 수비가 너무 느슨했다. 이재성에 쉽게 돌파를 허용했고 루이스를 압박하기 위해 전진한 김진규의 공간을 김남춘이 메우려고 이동하면서 순간적으로 이동국에게 기회가 생겼다. 선제골 이후 전북의 스리백은 점차 안정감을 찾아갔다. 전반 39분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았지만 이번에도 아드리아노의 마무리가 부족했다.
#최철순
올 시즌 최철순의 포지션 파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달 26일 감바 오사카와의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격해 우사미를 지워버렸던 최철순은 서울전에서 센터백으로 변신해 아드리아노를 꽁꽁 묶었다. 센터백은 최철순에 낯선 포지션은 아니다. 청소년 시절 기성용과 함께 스리백을 섰던 그다. 허나, 그렇다고 쉬운 변화도 아니었다. 최철순은 “어렸을 때는 센터백을 자주 봤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지금은 측면을 더 많이 해왔기 때문에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실 측면보다 체력적으로는 덜 힘들었다. 측면에선 스피드를 100까지 내야 하지만 센터백에선 따라갈 때만 스피드를 내면 된다”고 말했다.
아드리아노와의 심리전에서도 최철순은 영리한 자세를 보였다. 아드리아노는 최철순의 계속된 맨투맨 방어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여러 차례 보였다. 경기 막판에는 최철순의 머리를 부여잡기도 했다. 최철순은 “아드리아노가 공간으로 뛰려고 하길래 막았는데 갑자기 머리를 잡았다. 때리면 쓰러질려고 했는데 때리진 않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드리아노가 다혈질이라 일부러 흥분시키려고 자주 괴롭혔다. 잘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록으로도 최철순이 아드리아노의 질주를 얼마나 잘 따라다녔는지 알 수 있다. 스프린트(24km/h 이상으로 뛴 횟수)에서 센터백으로 가장 많은 18번을 기록했다. 양 팀 동틀어 5번째로 많은 숫자다. 이는 6번째인 아드리아노(16번)보다 많이 뛴 최철순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승부였다.
#후반전
실제로 후반에 최철순은 아드리아노에게 거의 찬스를 내주지 않았다. 김형일, 김기희와의 호흡은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다. 수비의 안정감 속에 전북은 후반 8분 이재성의 추가골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서울은 후반 시작과 함께 몰리나와 윤주태를 투입하며 공격에 변화를 줬지만 전북의 스리백을 흔들지 못했다. 선수가 바뀌었지만 공격의 전체적인 방향과 목적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격수가 센터백을 유인하는 움직임이 부족했고 측면에서도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결국 서울은 후반 22분이 돼서야 도전적인 변화를 감행했다. 박용우를 투입하고 오스마르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이 변화는 오히려 전북의 추가시간 쐐기골로 이어졌다. 오스마르의 전진으로 공격 숫자는 늘어났지만 반대로 중앙의 숫자는 1명이 줄었다. 이는 레오나르도가 차두리와 1대1을 펼치는 상황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했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전북에 3번째 골을 안기며 완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강희 감독은 경기 후 “스리백을 가동하면서 점유율을 내주는 대신 뒷공간을 주지 않으려 했다. 아드리아노의 배후 침투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반전 한 장면을 빼곤 거의 완벽하게 막았다”며 센터백 변신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최철순과 전북 선수들을 칭찬했다.
[사진·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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