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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사도’의 송강호(48)는 ‘변호인’에 이어 연속으로 실존인물을 연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하는 것은 예민한 감각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반면, 영조는 250년 전의 인물이라 상대적으로 편했다.
“제가 사극이나 왕에 대한 로망이 있는 배우가 아니예요. 임오화변을 대하는 이준익 감독의 태도가 좋았어요. 정통사극은 폭넓은 개념 같아요. 저는 ‘정공법’으로 다룬 사극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정치역학적인 관계 보다 군주인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의 관계에 집중한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흔들렸다.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충무로에서 캐스팅 수락 여부를 가장 빨리 알려주는 배우답게, 3일 만에 출연의사를 밝혔다.
캐릭터 리빌딩 작업을 하면서 걸음걸이, 표정, 제스처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중요했다. 영조가 사도를 뒤주에 가뒀을 때의 나이가 70세였다. 70대의 꼬장꼬장하고 노회한 인생역정이 묻어나길 바랐다. 이준익 감독은 송강호가 매일 밤 괴성을 지르며 목을 혹사시켰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목소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어요. 탁하면서도 갈라질 것 같은 목소리에 중점을 뒀죠. 고통스러운 인생역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밤마다 목을 혹사했는데, 다행히 피는 안나왔죠(웃음).”
그는 영조의 본질을 ‘외로움’으로 파악했다. 무수리 숙빈 최씨의 자식으로 태어나 조선 최초의 천민 출신 왕의 자리에 올라 출신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이복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노론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른 것도 정치적 부담이었다. 세 가지 불안 요소 속에서 52년간 국정을 이끌었던 영조는 고독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조의 외로움을 찍은 장면은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언뜻언뜻 그러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죠. 인원왕후(김해숙)와 설전을 벌이는 대목을 비롯해서 몇몇 장면에서 살짝 그런 연기를 했어요. 어마어마한 외로움이 영조 연기의 키 포인트였습니다.”
‘사도’는 과감하게 현대어를 사용했다. 기존의 사극에서 사용하던 말투 대신에 현대의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투가 그대로 등장한다. 언뜻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지만, 실제로 당시의 말투가 그랬다.
“그동안 사극 말투는 그랬을 것이라는 편견이 작용한 거예요. 실제 사료를 찾아보면 영조의 말투가 현대어와 똑같아요. 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고스란히 살려낸 거예요. 말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관람하면 더 좋을 겁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영조가 뒤주를 붙잡고 통곡하는 장면이다. 송강호가 9분에 걸쳐 토해낸다. 이 장면을 위해 밤새도록 괴성을 질렀다. 영조의 칠정(희노애락오욕애)이 분출하는 대목이다. 송강호는 시나리오을 읽을 때부터 이 장면을 승부처로 생각했다.
“언어는 연기를 위해 존재하죠. 정확한 언어가 방해될 때도 있어요. 연기했을 때 당시의 제 감정에 맡겼습니다. 그 순간 가장 절절하게 올라왔던 느낌을 표현했어요. 상당히 매혹적인 장면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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