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멀티플레이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특정 포지션에 강한 장인이 주목되기도 하지만 하나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각광받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공격 전지역에 설 수 있는 그들을 막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400억원 사나이’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 데뷔 후 2경기에서 다른 포지션에서 뛰었다. 첫 번째 경기는 측면 날개이자 처친 공격수였다. 영국 BBC는 “손흥민이 10번(플레이메이커)처럼 뛰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최전방 공격수였다.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해리 케인을 대신해 원톱을 맡았다. 누구와 붙었냐는 상대성과 경기 당일의 컨디션 등의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두 경기의 결과는 180도 달랐다. 9번 손흥민과 10번 손흥민의 차이는 무엇일까?
#토트넘 포메이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을 최전방에 배치했다. 케인은 벤치에 앉았고 델리 알리, 에릭 라멜라, 앤드로스 타운센트가 공격 2선에 자리했다. 부상으로 빠진 라이언 메이슨의 공백은 톰 캐롤이 메웠고 포백 수비에선 케빈 빅머와 키어란 트리피어가 선발로 나섰다.
#10번 손흥민
토트넘 공식 데뷔전이었던, 지난 주말 선덜랜드 원정에서 손흥민은 케인 아래의 2선에서 오른쪽 날개로 출전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측면으로 벌리지 않고 중앙으로 들어와 플레이 했다. 현지 언론들이 손흥민이 10번처럼 뛰었다고 한 이유다. 하지만 손흥민에게 공간이 생기지 않았다. 선덜랜드 포백 간격은 매우 촘촘했고 미드필더와의 거리도 좁게 유지됐다. 결국 손흥민은 61분을 소화한 뒤 교체됐고 토트넘은 타운센트, 라멜라의 교체 투입과 메이슨의 전진 그리고 선덜랜드의 교체 실패로 1-0 승리를 따냈다. (선덜랜드 0-1 토트넘 : 손흥민 데뷔전, 왜 10번처럼 뛰었나)
#9번 손흥민
최전방 공격수(9번)은 손흥민에게 낯설지도 낯익지도 않은 포지션이다. 함부르크 시절 경험했고 지난 호주아시안컵에선 8강 우즈베키스탄에 공격수로 변신해 2골을 기록했었다. 확실한 한방이 있는 손흥민에겐 어울리는 포지션이다. 또한 포체티노 감독이 단 두 경기만에 손흥민을 최전방으로 올린 배경이기도 하다. 포체티노는 손흥민을 영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손흥민은 한국 대표로도 많은 골을 넣었다. 그는 스트라이커로 뛸 수 있다. 함부르크 시절에도 9번 역할을 소화했다. 레버쿠젠 이후 7번과 11번을 주로 맡았지만 10번도 해내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스트라이커에서 더 넓게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손흥민은 공간이 필요한 공격수다. 밀집 지역보다 상대 뒷공간을 파고들거나 수비 앞에서 자리를 잡고 때리는 강력한 슈팅이 위력적이다. 포체티노는 이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위치가 스트라이커 포지션이라고 믿었다. 카라바크전 손흥민의 위치와 역할은 포체티노가 9번 손흥민에게 어떠한 움직임을 원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기본적으로 손흥민은 원톱 위치에 자리했지만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후방으로 내려오거나 라멜라, 알리 등과 유기적으로 위치를 바꿨다. 다만 제로톱처럼 활동 범위가 넓진 않았다. 손흥민은 상대 센터백과 싸우지 않고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로 내려와 패스를 기다렸다. 전반 15분 장면에서 손흥민은 센터백의 압박에서 벗어나 알리의 패스를 받았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상대를 등진 상태에선 손흥민의 장점을 발휘하기 어렵다. 9번 공격수지만 득점을 노리는 움직임은 10번 같았다.
#데뷔골&멀티골
결과적으로 최전방에 선 손흥민은 데뷔골과 멀티골로 포체티노의 믿음에 답했다. 첫 골에선 카라바크의 세트피스 실수를 손흥민이 놓치지 않았다. 카라바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너킥 상황에서 손흥민을 타이트하게 붙지 않았다. 토비 알더베이럴트, 에릭 다이어, 라멜라, 알리에겐 맨투맨이 있었지만 손흥민은 골키퍼 앞에서 자유로웠다. 마치 센터백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내려온 것처럼 손흥민에게 넓은 공간이 생겼다. 히카르드 알메이다가 코너킥 직전 손흥민 근처로 이동했지만 지역을 커버하는데 그쳤다. 카라바크는 이미 전반 16분에도 같은 코너킥 위치에서 손흥민을 자유롭게 뒀었다. 결국 잘못된 세트피스 방어가 카라바크에겐 치명적인 실점으로 이어졌다.
토트넘 데뷔골이 터진지 채 2분이 되기도 전에 멀티골이자 역전골이 나왔다. 알더베이럴트와 라멜라가 압박으로 공을 탈취한 뒤 알리를 거쳐 역시 센터백의 압박에서 벗어나 밑으로 내려온 손흥민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손흥민은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알리에게 전진패스를 찔러준 뒤 앞으로 쇄도했고 다시 알리의 패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도 카라바크는 손흥민을 따라붙지 않았다. 알메이다는 달리기를 멈췄고 다니 퀸타나가 뒤늦게 따라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카라바크는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에서 움직인 손흥민을 누가 수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센터백은 손흥민을 따라가지 않았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가라 가라예프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환상 데뷔전
손흥민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토트넘 홈 데뷔전이었다. 2경기 만에 멀티골을 기록하며 득점에 대한 부담을 덜었고 화이트 하트레인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포체티노 감독의 두터운 신뢰도 확인했다. 공격 전지역에 손흥민을 활용하겠다던 그의 발언은 실제 경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다양한 포지션을 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특히나 포체티노 축구에선 그것이 더욱 빛날 수 있다. 토트넘도 등번호 7번을 달고 10번은 물론 9번까지도 소화하는 손흥민의 등장으로 케인에 대한 득점 의존도를 덜어낼 수 있게 됐다. 모두가 바란 손흥민의 출발이다.
[사진 = AFPBBNEWS, SPOTV 중계화면 /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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