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일명 ‘게겐프레싱(Gegen Pressing)’으로 불리는 독일판 전방 압박은 위르겐 클롭(48)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만든 키워드다. 그래서 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도전을 택했을 때 과연, 리버풀에서도 게겐프레싱이 재현될 수 있을지 많은 궁금증이 따랐다. 클롭의 데뷔전은 이 물음에 ‘Yes’로 답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무대가 바뀌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다만, 도르트문트에서의 축구를 재현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포메이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클롭과 가장 비슷한 축구를 구사한 감독 중 하나였다. 때문에 클롭의 데뷔전 무대가 토트넘 홋스퍼의 홈구장 화이트하트레인이 된 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포체티노는 분데스리가 시절 클롭의 천적으로 불린 손흥민 없이 리버풀을 맞았다. 최전방 해리 케인부터 최후방 휴고 요리스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경고누적으로 빠진 에릭 다이어의 자리에 무사 뎀벨레가 섰고 왼쪽 풀백에는 벤 데이비스 대신 대니 로즈가 자리했다.
리버풀 데뷔전에 나선 클롭은 플랫4를 가동했다. 마틴 스크르텔과 마마두 사코가 센터백을 맡았고 엠레 찬은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됐다. 그리고 원톱에는 놀랍게도 디보크 오리지가 섰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니엘 스터리지, 크리스티안 벤테케, 대니 잉스가 모두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시작은 4-2-3-1이었지만 게겐프레싱이 진행되면서 4-1-4-1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게겐프레싱
리버풀의 압박은 시작부터 강렬했다. 기다리지 않았다. 먼저 움직였다. 토트넘의 후방 빌드업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토트넘이 패스를 할 때 리버풀 선수들은 다음 타겟을 향해 뛰었다. 숫자가 말해준다. 이날 리버풀은 무려 614번의 질주(Sptints)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더비(458번)보다 무려 156번이나 많은 질주다. 팀 전체가 뛴 거리도 116km였다. 이는 올 시즌 리버풀이 기록한 최대 거리다. 제법 타이했다고 느껴졌던 머지사이드더비(106.5km)보다 9.5km를 더 뛰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이렇게 말했다. “클롭의 지휘 아래 리버풀은 많이 뛰고 많은 곳을 커버했다”
토트넘과의 비교에서 리버풀의 게겐프레싱은 더 뚜렷해진다. 토트넘은 개막 후 8경기에서 모두 상대보다 많은 거리를 뛰었다. 4-1 대승을 거뒀던 맨체스터 시티전에선 +10km를 더 뛰었다. 스완지시티전도 +9.3km가 많았다. 두 경기에서 무려 +19km를 더 질주한 토트넘이다. 평균 23.7세의 젊은 토트넘 축구의 특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헌데, 리버풀전에선 처음으로 뛴 거리가 역전됐다. 토트넘은 리버풀 보다 -1.2km를 덜 뛰었다.
클롭의 게겐프레싱이 잘 작동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나이’다. 많이 뛰려면 젊어야 한다. 포체티노가 어린 선수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클롭도 젊고 빠른 선수를 선호한다. 도르트문트가 레알 마드리드를 대파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던 2013-14시즌 평균 나이는 약26세였다. 지금의 리버풀과 비슷한 연령대다. 토트넘전에 나선 선발 11명의 평균 나이는 25.1세였다.
또 하나는 ‘스피드’다. 클롭이 피에르 아우바메양, 마르코 로이스, 헨릭 음키타리안 등을 중용한 건 그래서다. 빨리 쫓아야 즉각적인 압박이 가능하다. 또한 뺏은 뒤에는 빠르게 치고 나가 역습을 시도할 수 있다. 로저스 시절 외면 받았던 오리지가 클롭 데뷔전에 선택 받은 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클롭은 경기 후 오리지에 대해 “도르트문트 시절 영입하려 했었다. 젊고 기술이 좋다. 단지 경험이 부족할 뿐”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밀너
로저스 아래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제임스 밀너가 클롭 감독에선 다시 측면으로 이동했다. 맨시티 시절 왼쪽 날개로 뛰었던 밀너다. 어쩌면 밀너에겐 더 어울리는 역할인지도 모른다. 이 경기에선 밀너의 포지셔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1-4-1에서 오른쪽 날개로 출발했지만 수비시에는 자주 중앙으로 이동했다. 즉, 리버풀이 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수비시)는 중앙과 좁게 간격을 유지했지만 공을 소유했을 때(공격시)는 측면으로 넓게 벌렸다. 많은 공간을 커버했고 그 결과 밀너는 13.1km를 뛰고 82번의 질주(Sprints)를 했다. 이는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기록이다.
#후반전
90분 동안 계속해서 뛸 수는 없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처럼 속도가 빠른 곳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의 강도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예상대로, 리버풀도 후반 들어 ‘압박’과 약해지고 ‘속도’가 느려졌다. 영국 BBC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앨런 시어러는 “리버풀의 전방 압박은 대단했다. 높은 위치에서 3~4명의 선수가 볼을 빼앗는데 집중했다. 쫓고, 쫓고 또 쫓았다. 하지만 후반에는 체력적인 문제가 나타나면서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고 평했다.
또 다른 문제는 압박 그 후였다. 과거 도르트문트가 ‘꿀벌’로 불린 건 단지 그들의 유니폼이 노랗기 때문은 아니었다. 게겐프레싱으로 상대의 공을 빼앗은 뒤 그것을 소유하고 공격으로 날카롭게 전진했다. 그러나 리버풀은 ‘압박’은 되고 ‘소유’는 안됐다. 클롭도 “우리의 문제는 공을 소유했을 때 차분하게 플레이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선수 구성의 문제로 보는 시선도 있다. 필리페 쿠티뉴와 아담 랄라나는 ‘소유’보다 ‘드리블’을 좋아하고 밀너와 엠레 찬은 역습으로 나가기에는 ‘속도’가 부족하다. 게다가 오리지는 너무 쉽게 공을 빼앗겼다. 사실 당장 오리지한테 로베르토 레반토프스키와 아우바메양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루이스 수아레스, 라힘 스털링이 있던 ‘SSS’ 시절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자원으론 클롭 축구를 완벽히 재현하긴 어렵다.
#클롭
클롭은 스스로를 ‘마법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하나의 팀이 180도 다른 팀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클롭은 데뷔전에서 자신의 색깔을 보여줬다. 리버풀이 게겐프레싱을 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분명해 보였다. 클롭은 경기 후 “리버풀은 더 강해질 것이다. 겨우 3일 훈련하고 경기했다. 그것을 감안하면 아주 잘 했다고 볼 수 있다. 경기 초반 20분에 보여준 압박은 매우 좋았다.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확인했다”며 안필드 팬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