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브릿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 변호인의 위대한 협상[MD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의 테마 중 하나는 구원 또는 구출이다. 그는 ‘쉰들러 리스트’의 수천명의 유대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라이언 일병, ‘링컨’의 수많은 흑인을 구해내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옹호했다. ‘스파이 브릿지’에선 적국 스파이, 미 공군 조종사, 예일대 대학생을 구해낸다.

구원의 밑바탕에는 마땅히 그러해야한다는 인간에 대한 당위가 깔려있다. 세상 그 어느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수 없다는 굳건한 믿음이 스필버그 영화의 뼈대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공포가 최고조에 달한 1957년. 보험 전문 변호인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변호사협회의 지시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적국의 스파이를 변호한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일이지만, 도노반은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으로 아벨을 변호한다. 때마침 소련에서 CIA 첩보기 조종사 게리 파월스(오스틴 스토웰)가 붙잡히고, 도노반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스파이 맞교환 협상에 나선다.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스파이 브릿지’에서 냉전시대의 핵전쟁 공포와 적국에 대한 증오심은 이야기의 마당을 제공할 뿐이다. ‘스파이 브릿지’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벨 대령과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한다”는 소신을 실천하는 도노반 변호인의 캐릭터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아벨이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벨 자신, 거울에 비친 아벨, 캔버스에 그려지고 있는 아벨. 이 세 가지 얼굴은 스필버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담겼다. 스필버그가 지적한대로, 우리가 사회적 편견에 따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나쁘지 않으며, 그럴 의도조차 갖고 있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 실제 아벨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 예술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신뢰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스필버그는 스파이를 냉혈한으로 그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면, 이 영화는 망작이 됐을 것이다. 그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도노반 변호인의 첫 등장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의뢰인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그는 상대 변호인이 제시한 프레임을 다른 비유를 끌어들여 재설정하는 리프레이밍 협상기법으로 굴복시킨다. CIA 요원이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협조를 요청할 때도 그는 헌법의 가치를 옹호하며 단칼에 거절한다. 이 두 장면은 후반부 소련과 협상 줄다리기를 할 때 다시 한번 반복되며 극적 재미를 끌어 올린다.

영국의 극작가 맷 차먼은 도노반, 아벨, 게리 파월스, 그리고 공산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동베를린으로 갔다가 스파이로 오인 받아 동독 경찰에 체포된 대학생 프레드릭 프라이어(윌 로저스) 등 4명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켰고, 코엔 형제는 각각의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스필버그 감독은 도노반이 법정에서 아벨을 변론하는 과정을 생략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스파이 브릿지’는 법리와 논쟁이 오가는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협상과 생존이 오가는 스파이 스릴러다. 극 후반부 도노반이 민간인 신분으로 혼자 동베를린에 들어가 불리한 위치에서 대담한 협상을 벌이는 대목은 총성 한 방 들리지 않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데도 단단한 긴장감으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코엔 형제와 스필버그 감독이 아벨 캐릭터를 너무나 훌륭하게 구축해 놓은 덕에 관객은 적국의 스파이를 응원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사형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의지와 예술가적 풍모, 그리고 도노반에 대한 존경이 그의 인간미를 강화시킨다.

아벨과 도노반이 접결실에서 만날 때마다 환한 빛이 쏟아지는 유리창이 등장한다. 이들의 미래가 밝게 빛날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아벨은 아무리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어린 시절의 아저씨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노반을 ‘스탠딩맨(오뚝이)’이라고 부른다. 아벨도 스탱딩맨이다.

아벨을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는 내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의 강력한 후보다. 이토록 인간적인 스파이라니.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어 또 다시 누군가를 구원하는 캐릭터를 맡은 톰 행크스의 중후하고 안정된 연기력도 일품이다.

스필버그 감독처럼 꾸준하게 구원의 테마를 다루는 감독도 드물다. 구원은 단지 한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를 살려내는 일이다. 5일 개봉.

[사진 제공 = 20세기 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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