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야구장에서 뛰는 것 자체부터 부러웠죠"
고등학교 시절 정영일(27·SK 와이번스)은 '초고교급 선수'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투수였다. 광주 진흥고에 재학 중이던 2006년 4월, 대통령배 야구대회에서 이틀간 13⅔이닝 동안 23탈삼진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의 선택은 KBO리그가 아닌 미국 진출이었다. LA 에인절스와 135만 달러(약 15억원)에 계약하며 메이저리거가 되는 꿈을 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부상으로 인해 이렇다 할 활약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방출됐다.
시련은 계속됐다. '2년간 국내 구단과 계약할 수 없다는 KBO 규약상 국내 무대에서 뛸 수 조차 없었던 것. 그는 일본 독립리그에 이어 국내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프로 1군 마운드에 오르는 것조차 그에게는 꿈 같은 일이 됐다.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3년 8월 열린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전체 53순위)에 지명된 것. 그를 선택한 팀은 SK였다. 그렇지만 당시 그의 모습을 드래프트장에서는 볼 수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정영일은 "마음은 가고 싶었는데 될지 안될지 몰랐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며 "중계되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더 아래 라운드에서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뽑혔다. 순위는 상관없고 뽑힌 것에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난 2년간 상무에서 군 복무를 수행했다. 2015시즌 그는 주로 중간계투로 나섰다. 성적은 51경기 3승 1패 2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4.66.
겉으로 드러난 기록은 아주 인상적이지 않지만 150km를 넘나드는 공을 마음껏 뿌리며 건강해진 몸 상태를 확인했다. 또 7월 열린 퓨처스 올스타전에도 모습을 드러내 1이닝 무실점을 남겼다.
지난 9월 전역한 그는 이제 '진짜 KBO리그 선수'로서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9월부터 참가한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도 6경기 등판, 6이닝 2피안타 10탈삼진 1볼넷 무실점 평균자책점 0.00을 남기며 구단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정영일 역시 "결과도 결과지만 내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1988년생인 정영일의 동갑내기들은 이미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거듭났다. 그 중에서도 같은팀의 김광현과 양현종(KIA)은 리그 대표 좌완투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들은 2006년 쿠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끈 인물들이기도 하다.
"솔직히 부러웠다"고 운을 띄운 그는 "잘했던 친구들이다. 프로에 와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엇보다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나는 몸도 아프고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제는 다르다. 내년부터 정영일은 김광현, 양현종처럼 1군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질 수 있다. 그는 "걱정보다는 기대가 많이 된다. 빨리 시즌 개막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들이 2007년 처음 밟은 KBO리그 1군 마운드를 9년이 지난 뒤 밟게 됐다. 하지만 뒤쳐져 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는 여전히 150km대 공을 어렵지 않게 뿌리며, 여전히 창창한 20대다. 정영일의 꿈이 2016년 현실이 된다.
[정영일. 사진=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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