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2승1패가 되니 (우승)하겠다 싶더라."
14년만에 한국시리즈서 우승한 두산. 김태형 감독은 초보 사령탑답지 않게 노련한 단기전 운영을 선보이며 감독 데뷔 첫 시즌에 우승컵을 들었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직후에도 거의 제대로 쉬지 못했다. 우승 축하행사와 인터뷰 등 각종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로를 풀지 못했고, 잦은 술자리와 기름진 음식 섭취로 몸무게가 늘었다.
10일 잠실구장 두산 사무실에서 만난 김태형 감독은 "본래 82~85kg 정도였는데 올 시즌 7kg 정도 쪘다. 포스트시즌서만 3kg이 늘었다"라고 했다. 결국 김 감독의 건강에 적색 신호등이 들어왔다. 지난 8일 오른발에 통풍이 왔다. 걸음이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김 감독은 "약을 먹고 많이 좋아졌다. 우승했는데 이 정도는 부상 투혼으로 봐달라"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김 감독과 함께 포스트시즌을 되돌아봤다.
▲넥센은 이기자고 마음 먹었는데
두산은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다. 극심한 마운드 언밸런스에도 불구하고 야수진과 선발진의 도움, 김태형 감독의 적절한 용병술로 2년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복귀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를 3승1패로 잡았고, NC와의 플레이오프는 3승2패로 끝냈다. 그리고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1패 후 4연승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 14년만의 정상에 섰다.
김태형 감독은 "포스트시즌에 들어가기 전 넥센은 이겨야겠다 싶더라"고 했다. 맥 없이 준플레이오프서 탈락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뜻대로 됐다. 4차전 2-9서 11-9로 뒤집은 게 결정적이었다. 그 흐름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어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 감독은 "운이 우리에게 오는 것 같았다. 스와잭이 빠졌지만, NC와도 좋은 승부를 할 수 있다고 봤다"라고 털어놨다.
플레이오프 4차전까지 2승2패로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마산 5차전 단판승부서 이겼다. 김 감독은 "5차전은 50대50으로 봤다. 낮 경기에 강해서 기대하긴 했는데, 스튜어트가 만만한 투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벤치 분위기가 좋았다. 2점 준 뒤 역전하길래 이기겠다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준플레이오프 4차전, 플레이오프 5차전의 고비를 넘기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되자 우승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라고 했다.
▲삼성 도박사건을 의식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기간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이 해외원정도박 파문에 휩싸이면서, 플레이오프 승자가 한국시리즈서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 두산의 우승은 그런 측면에서 약간의 운을 본 것도 사실이다. (물론 두산의 실력으로 당당히 따낸 한국시리즈 우승컵이다.)
김 감독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우리 젊은 투수들이 유독 삼성 타자들에게 약했다"라고 털어놨다. 두산은 정규시즌 삼성에 5승11패로 크게 밀렸다. 삼성 타선이 유독 두산 마운드의 약한 고리를 잘 공략했다. 김 감독은 "필승계투조들이 빠져나갔지만, 타선은 그대로였다. 야구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삼성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고 봤다. 플레이오프 기간에는 정말 NC만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1차전서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2차전부터 기적처럼 흐름을 장악, 4연승했다. 김 감독은 "2차전 이후 삼성 투수 운영이 버거워 보이긴 하더라. 2차전서 이기면서 투수 운영에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했다. 재미있는 건 김 감독의 반응. 그는 "1차전 직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울화통이 터질 정도는 아니었다. 정규시즌 때 그렇게 많이 져서"라고 웃었다. 그런데 그는 "2차전을 이기고 나니, 1차전서 진 게 더 아깝더라"고 했다. 두산으로선 1차전마저 잡았을 경우 4-0 시리즈도 가능했다.
두산으로서도 쉬운 한국시리즈가 아니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서 이미 마운드 아킬레스건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필승계투조가 완벽히 무너졌고, 선발투수 유희관도 좋지 않았다. 김 감독은 "니퍼트 장원준 이현승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왔다. 한국시리즈 직전에는 이들로 우승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은 "함덕주가 완전히 무너졌다. 이현승마저 무너지면 완전히 끝나는 것이었다. 그 이후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고 웃었다.
결국 버텨냈다. 상대적으로 삼성의 투타 경기력이 너무 좋지 않았고, 두산은 더스틴 니퍼트를 내세워 2차전서 승리한 뒤 흐름을 탔다. 김 감독은 "2승1패를 하니 우승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5차전서 끝내는 게 중요했다. 5차전서 유희관이 5이닝 4실점만 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6~7차전까지 가면 버겁다고 봤다"라고 털어놨다. 삼성 투수력이 무너졌지만, 두산 투수력 역시 좋지 않은 상황서 6~7차전을 치를 경우 타격전이 불가피했고, 두산으로선 우승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미디어데이 입담으로 본 리더십
포스트시즌 내내 김태형 감독의 미디어데이 입담이 화제였다. 본래 김 감독은 입담 좋기로 유명하다. 말로 남들을 유쾌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방송 카메라 앞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서 "조상우가 너무 많이 던져 걱정이다. 선수의 미래가 있는데 저래도 되나 싶다"라면서 조상우에게 "(염경엽 감독이)너무 많이 던지게 하면 안 나간다고 해라"라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서도 NC 이호준과 설전을 벌여 재미를 안겼다.
김 감독은 "일부러 그런 걸(심리전) 준비한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리고 진심을 털어놨다. "1년 감독을 해보니, 내가 선수들에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 것 같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선수들이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털어놨다. 미디어데이 발언의 의도를 굳이 찾는다면, 선수들에게 자신이 편안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과도한 긴장을 하지 않는 걸 원했다.
김 감독은 선수단 관리 측면에선 자율과 원칙을 절묘하게 섞었다. 그는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간섭하면 선수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참급 선수들에겐 알아서 훈련 스케줄을 짜게 했다. 그 선수들은 피곤하면 쉬었고, 훈련이 더 필요하다 싶으면 더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기본은 잡아야 했다. 그라운드에 들어오면 신인이든 고참이든 똑같이 대우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은 홍성흔에게 고마움이 크다. 그는 "성흔이에게 고참 대접을 전혀 하지 않았다. 1~2타석 치게 하고 곧바로 빼기도 했는데, 내색 한번 하지 않더라"고 했다. 이어 "시즌 전에 선수들에게 번트 실패하거나 삼진을 당하면 고개 숙이지 말라고 했다. 그런 행동들이 오히려 팀 분위기를 가라앉게 한다. 그리고 경기 중에 갑자기 교체되거나 강판되더라도 그냥 넘기라고 했다. 개인보다는 팀이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줬다"라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자신의 선수기용에 뒷말이 나오는 걸 경계했다. 결과적으로 단단한 팀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그는 "성흔이는 경기에 나가지 못해도 덕아웃에서 박수 치고 활기를 불어넣었다"라고 했다. 베테랑의 그런 행동이 좋은 팀 문화 형성에 일조했고, 한국시리즈 우승의 원동력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김태형 감독은 "어떤 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아직도 우승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김 감독은 기본, 자율, 원칙이 적절히 분배된 리더십을 실천했다. 김 감독의 리더십 속에 두산은 아주 완벽하지 않은 전력에도 14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김태형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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