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단신 테크니션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KBL은 올 시즌 여론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외국선수 장, 단신 구분 제도를 재도입했다. 193cm를 기준으로 장, 단신을 1명씩 영입, 제럴드 워커형 테크니션 외국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늘려 프로농구 인기를 되살리자는 의도였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귀결되고 있다. 단신 테크니션이 결국 사라지고, 단신 빅맨들이 유입될 것이란 전망은 일찌감치 나왔다. 농구는 외곽슛과 빠른 돌파로 작은 신장을 극복하는 테크니션에 비해 골밑에서 안정적인 득점을 올리는 빅맨들에게 유리한 스포츠. 림 가까이에서 슛을 던질수록 득점 확률이 높다. 구단들은 볼거리보다는 성적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제대로 된 단신 테크니션은 조 잭슨(오리온), 안드레 에밋(KCC) 정도다. 대부분 단신 외국선수는 코트에서 사라졌다. 반면 처음부터 단신 빅맨을 뽑은 모비스(커스버트 빅터), KT(마커스 브레이클리) 등은 순항하고 있다.
동부가 빅히트를 쳤다. 볼을 질질 끌어 국내선수들과 융화가 되지 않았던 라샤드 제임스를 내보내고 영입한 웬델 맥키네스가 맹활약 중이다. 예년보다 골밑에서의 몸싸움 능력이 약해진 김주성과 윤호영의 작은 약점까지 메워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비스의 선두권 순항도 외곽성향이 강한 리오 라이온스의 시즌 초반 부상 퇴단 이후 아이라 클라크의 정착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밖에 전자랜드가 25일 자멜 콘리 데뷔전을 마쳤고, 삼성도 론 하워드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지역방어의 덫
시즌 전 KBL의 장, 단신 외국선수 구분이 확정되자 한 프로 감독은 "취지 자체는 이해를 하겠는데 예전과 지금의 수비전술이 달라서 단신 테크니션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또 다른 감독은 "아주 기술이 좋은 테크니션은 아무리 상대 팀으로부터 분석돼도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어정쩡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KBL의 수비전술 수준이 높다"라고 했다.
감독들은 대박을 기원하고 단신 테크니션들을 데려왔다. 그러나 2~3일간의 트라이아웃만으로 진정한 타짜를 가리는 건 무리였다. 에밋 정도가 안정적이고, 잭슨의 경우 여전히 경기별 팀 공헌도에 큰 기복이 있지만, 워낙 오리온 전력이 안정적이라서 표시가 덜 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잭슨은 지역방어 극복에 어려움을 겪는다. 추일승 감독은 "대부분 단신 선수가 지역방어 공략에 어려움을 겪는다. 조도 지역방어를 공략해본 경험이 적다"라고 했다.
KBL 구단들이 구사하는 지역방어는 복잡하다. KBL 초창기에 비하면 수준이 한참 차이가 난다. 현재 대부분 구단은 매치업 존 형태의 지역방어를 선호한다. 공이 도는 위치에 따라 2-3, 3-2 등 모양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공을 잡은 선수에게 2명씩 붙고 공이 돌면 로테이션하는 경우도 있다. 공격수 입장에선 맨투맨같은 지역방어. 단신 빅맨들은 특유의 힘과 골밑에서의 파괴력으로 결국 극복하지만, 테크니션들은 살 길을 잃는다. 지역방어에서 변형하기 쉬운 함정수비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단신 외국선수 2명을 보유한 팀은 3쿼터에 지역방어 빈도를 높여 단신 테크니션들을 보유한 팀을 옥죈다. 함지훈, 김주성 등 국내빅맨들이 있는 팀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4라운드부터 2쿼터에도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출전하면 이 부분은 더욱 심해질 게 확실시된다.
▲기준점 193cm 의미도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서 장, 단신자를 구분하는 기준점인 193cm도 그 의미가 사실상 사라졌다. 결국 KBL은 단신 테크니션들의 냉혹한 현실을 맛봤고,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193cm 기준으로 장, 단신을 선발하는 건 무의미하다. 계속 단신 빅맨들이 KBL에 유입, 단신 테크니션의 성공 확률을 떨어뜨린다. 장기적으로는 토종 빅맨 수급이 위축될 수 있다. 빅맨들이 늘어나면 지역방어 빈도가 높아지고 오히려 흥미는 반감된다.
한 관계자는 "KBL의 취지 자체는 공감한다. 단신 테크니션이 있어야 볼거리도 늘어나고, 그만큼 토종 빅맨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살리는 방법은 한 가지뿐 이다. 이 관계자는 "다음 시즌부터 장, 단신 193cm 기준점을 더 낮추는 걸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했다.
장, 단신 기준을 185cm~190cm 정도로 낮추면 단신 빅맨은 KBL 진입 자체가 원천 봉쇄된다. 모든 구단이 힘에 의존하지 않는 가드, 포워드형 외국선수들을 1명씩 보유하게 된다. 그럴 경우 당장 KBL 부적응자가 늘어날 위험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하지만, 단신 빅맨이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에 단신 가드형 테크니션의 KBL 적응을 기다려줄 여유는 생긴다. 그 사이 국내선수 비중이 높아지는 장점도 있다. 물론 신장 기준을 낮춘다고 해서 수준급 가드형 테크니션들이 KBL을 밟는다는 보장은 없다.
KBL은 다음 시즌부터는 어떻게든 외국선수 제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뀐 제도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시즌 전 언론들의 예상과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조 잭슨(위), 안드레 에밋(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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