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SK 와이번스를 창단 초기부터 좋아했던 팬들에게 이승호란 존재는 특별하다. 2000년 창단 첫 해 승률 .260(44승 3무 86패)였던 SK에서 고졸 신인 이승호는 팀의 몇 안 되는 자랑이었다.
크지 않은 체격으로 씩씩하게 상대 타자들을 연신 제압했다. 2000년, 이승호는 나오고 또 나왔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2경기 10승 12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4.51을 기록했다. 덕분에 그는 신인상과 함께 국가대표로 시드니올림픽 동메달도 따냈다. 아직까지도 SK 출신 신인왕은 이승호가 유일하다.
2004년까지는 그야말로 잘 나갔다. 약간의 부침이 있기도 했지만 2001년 14승, 2004년 15승을 거두며 팀 주축투수로 활약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어깨 부상으로 인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단 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6년과 2007년에는 단 한 경기 출장기록도 없다.
2008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중간계투로 29경기에 나서 4승 1패 5홀드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하며 자신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기쁨을 누렸다. 2010년에는 마무리 투수로도 나서 20세이브를 올렸다.
2011시즌까지 SK에서 활동한 이승호는 FA 권리를 얻어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4년 최대 24억원 조건이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금액과 차이가 났던 SK도 기쁜 마음으로 떠나 보냈다.
이승호에게 지난 4년은 잊고 싶은 기간이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롯데와 NC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승호 역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올시즌 종료 후 이승호는 NC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친정팀 SK가 그를 다시 품었다. 한 때 SK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던 그는 어느덧 SK 최고참급이 됐다. 팀이 선수 구성을 재편하고 있는 상황에서 1981년생들이 최고참급이 됐기 때문.
이승호도 이를 모를리 없다. 그는 "어느덧 나이가 그렇게 됐다"고 웃은 뒤 "예전에는 선배님들을 모시기만 했는데 이제는 최고참으로서 대화도 많이 하고 조언도 해주겠다. 내가 어릴 때 선배님들이 해주셨던 부분을 이제는 내가 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호는 인터뷰 도중 "친정팀에 돌아와서 마음도 편하고 기분도 좋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후회없이 해보고 싶다"는 이승호가 경기장 안팎에서 SK 기대에 부응하며 예전 '소년가장' 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SK로 컴백한 이승호. 사진=마이데일리DB, SK 와이번스 제공]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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