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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 둘째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셋째 치카(카호) 자매는 어느날 15년전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 소식을 접한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홀로 남겨진 이복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에게 마음이 쓰인다. 기차에 올라타 헤어질 무렵, 사치는 스즈에게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라고 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제나 ‘죽은(떠난) 사람이 산(남겨진)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탐구했다. 자살한 전 남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1995년 데뷔작 ‘환상의 빛’, 엄마가 떠난 후 남겨진 네 남매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아무도 모른다’(2004),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하는 사무라이를 코믹하게 담아낸 ‘하나’(2006), 오래전 큰 아들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걸어도 걸어도’(2009),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 해체를 겪는 초등생의 생활을 담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6년간 키운 아들을 떠나보내며 겪는 아버지의 갈등을 그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잔잔하면서도 감정이 깊고, 따뜻하면서도 여운이 짙다. 떠난 사람이 남겨놓은 흔적이 조금씩 조금씩 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궤적을 조용하게 응시하는 이 영화는 시골에 내려쬐는 눈부신 풍광부터 음식에 깃들어있는 소박한 행복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둘러싼 빛나는 순간을 소중하게 보듬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찬미한다.
극 초반부 장례식장에서 스즈를 처음 만난 사치 자매는 스즈와 함께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경치를 감상한다. 그곳은 스즈가 아버지와 함께 자주 올랐던 공간이다. 극 후반부에 사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카마쿠라 마을의 언덕에서 푸른 바다와 햇빛이 빚어내는 풍경을 기억해낸다. 사치 자매와 스즈를 묶는 끈은 단순히 아버지의 생물학적 DNA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버지를 비롯해 할머니, 어머니 등 떠난 사람과 함께 공유했던 잔멸치덮밥, 매실주, 해산물카레를 영화의 주재료로 삼아 떠난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여백을 세세한 디테일로 채워나간다. 변치 않는 미각처럼, 추억은 온 몸에 각인된다. 난생 처음 만난 사치 자매와 스즈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추억을 떠올리며 낯설었던 벽을 허물어간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등장했던 기차를 활용해 만남과 이별의 인생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인장도 반갑다.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던 아버지를 미워한 사치는 스즈를 받아들이면서 아버지에 갖고 있던 감정에 변화를 일으킨다. 원망과 미움으로 닫혀 있던 마음이 행복과 감사로 열린다. 그렇게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진 제공 = 국외자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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