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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일명 크랙(crack:깨부수는 역할)으로 불리는 선수들이 즐비한 현대 축구에서 수비 방식은 점차 대인 방어(1:1 맨마킹)에서 지역 방어(할당지역에서의 대인방어)로 변화했다. 포지션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지역 방어가 대세를 이룬 이유 중 하나다. 잦은 포지션 체인지로 인해 대인 방어를 펼칠 경우 오히려 자신들의 진영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토 레하겔 감독이 이끈 그리스가 유로2004에서 대인 방어로 깜짝 우승을 일궜지만 이후 1:1 맨마킹은 토너먼트 대회 혹은 빅매치에서 상대 주요 선수를 견제하는 수단에 국한됐던 것이 사실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루이스 판 할은 압박 과정에서 맨마킹을 선호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도 그가 이끈 오렌지군단은 중원에서 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상대 미드필더를 맨마킹 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맨마킹에는 항상 위험(risk)가 따른다. 다음은 리버풀의 레전드이자 영국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인 제이미 캐러거의 말이다.
“1:1 맨마킹을 시도하는 건 반대로 자신들의 수비지역에서도 1:1이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상당한 위험을 안고 싸우는 것이다. 내가 수비수 출신이기에 잘 안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1:1 상황이 될 수밖에 없지만 90분 동안 상대 공격수와 1:1 상황이 되는 걸 원하는 수비는 없다”
앞서 판 할의 맨마킹 수비를 언급한 이유는 지난 프리미어리그(EPL) 20라운드에서도 맨유가 스완지시티를 상대로 아찔했던 맨마킹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완지시티 투톱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 백스리(back three:3인 수비) 전술로 갑작스럽게 전환한 상황에서 대인 방어 시스템을 사용했다. 물론 결과는 맨유의 2-1 승리였다. 그리고 축구가 승리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방식은 아니었다. 허나 스완지시티의 경기력이 조금만 더 날카로웠다면 아마도 이 경기가 판 할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맨유의 방식은 경기 내내 팬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투톱 vs 3백
판 할 감독은 스완지시티가 4-4-2 다이아몬드 혹은 변형된 4-3-3(시구르드손 가짜9번:false nine)으로 경기를 시작하자 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당초 4-2-3-1이었던 포메이션은 3-5-1-1로 전환됐다. 애슐리 영이 오른쪽 윙백으로 전진했고 안데르 에레라가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오고 후안 마타가 10번(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이동했다. 판 할이 스완지시티 시스템에 따라 수동적인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지난 해 8월 30일 첫 맞대결서 뒤늦은 전술 대응으로 역전패를 당한 경험 때문이다. 당시 게리 몽크 감독은 후반에 기성용을 투입한 뒤 4-2-3-1에서 4-4-2 다이아몬드로 포메이션을 바꿨고 백포(back four:4인 수비)를 사용한 맨유를 상대로 짜릿한 뒤집기에 성공했다. 아마도 앨런 커티스 감독대행은 그것을 재현하려는 것 같았다.
맨유의 3백 전환에서 가장 이득은 본 선수는 윙백(wing back)으로 전진한 영이다. 아스톤빌라에서 윙어로 성장한 영은 풀백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수비부담이 없는 윙백에선 공격적으로 매우 위협적인 선수라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됐다. 이날 영은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4번의 득점 기회를 창출했고 가장 많은 크로스(10개)를 시도했으며 마샬의 선제골을 이끌어냈다.
#맨마킹
중원에선 치열한 1:1 맨마킹 싸움이 펼쳐졌다. 양 팀 모두 다이아몬드 미드필더가 형성되면서 공격과 수비 상황에서 대인 방어가 이뤄졌다. 또 맨유에선 좌우 윙백을 맡은 영과 앙토니 마샬이 수비지역으로 적극 내려오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완지시티가 가운데 미드필더를 일자로 나열한 4-4-2가 아닌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완지시티 투톱(안드레 아예우&웨인 라우틀리지)이 대인 방어를 뚫어도 맨유에선 스위퍼(sweeper) 크리스 스몰링이 항상 커버를 들어왔다. 지난 라운드에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토트넘 홋스퍼가 에릭 다이어를 센터백으로 내려 상대 투톱 전술을 상대로 ‘3vs2’의 수적 우위를 점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날 맨유의 3백이 훨씬 위험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형태의 4-4-2와 달리 다이아몬드 4-4-2는 투톱 사이의 간격이 더 멀다. 이는 상대 센터백 3명의 거리도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맨유는 좌우 스토퍼(stopper) 달레이 블린트 또는 필 존스가 1:1 맨마킹에 실패할 경우 반대 진영에 많은 공간을 내주는 위험에 자주 노출되곤 했다. 단지, 스완지시티가 이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을 뿐이다.
#스완지시티
올 시즌 스완지시티 전체의 경기력 저하가 증명된 경기이기도 했다. 전술적인 측면을 떠나 선수단 전체의 컨디션이 좋았던 지난 시즌과는 분명 비교됐다. 커티스 감독대행은 맨유의 뒷공간을 공략하기 위해 힘 좋은 바페팀비 고미스 대신 발 빠른 아예우와 라우틀리지를 투톱에 세웠다. 하지만 둘은 맨유 스토퍼(좌우 센터백)와의 1:1 대결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점유율 싸움에서 밀리며 둘에게 전달되는 패스의 숫자가 적기도 했지만 개인 대결에서도 상대를 위협할 만한 돌파가 많지 않았다.
#원톱 vs 4백
스완지시티의 동점골이 나온 건 4-4-2 다이아몬드에서 4-2-3-1 원톱으로 포메이션을 바꾼 뒤였다. 후반 17분 레온 브리튼 대신 모두 바로우가 투입되면서 아예우가 원톱으로 전진하고 길피 시구르드손이 그 아래 포진했다. 그러자 판 할이 또 다시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영이 윙백(wing back)에서 풀백(full back)으로 내려왔고 후반 시작과 동시에 존스 대신 들어온 마테오 다르미안이 왼쪽 풀백을 맡았다. ‘4-2-3-1 vs 4-2-3-1’로 전환된 순간이다. 3백에서 4백으로의 전환은 맨유 수비수들에게 일시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블린트는 3백일때처럼 대인방어를 위해 높은 위치까지 전진했고(사실 블린트는 올 시즌 4백에서도 이런 수비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스완지시티에게 뒷공간을 허용했다. 결국 바로우의 크로스가 올라왔고 맨유 미드필더와 센터백 사이에서 공간을 찾은 시구르드손에게 헤딩 동점골을 내줬다. 4-2-3-1 포메이션이 충돌할 때 가장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선수는 ‘10번’ 위치에 선 공격형 미드필더다. 보통 상대 센터백 중 한 명이 전진해서 압박을 가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선 ‘자유(freedom)’가 된다.
#루니&마샬
판 할 체제의 맨유에서 공격수들이 가진 몇 가지 문제 중 하나는 ‘원톱’과 ‘윙포워드 혹은 윙어’ 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멀다는 것이었다. 주로 웨인 루니와 마샬에 관한 지적이 주를 이뤘는데, 스완지시티와의 경기에선 그 부분이 많이 개선돼 보였다. 후반 2분 마샬의 헤딩 선제골 장면에서도 좌측 윙백(wing back) 포지션에 있던 마샬이 영의 크로스 상황에선 박스 안으로 들어와 루니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다. 만약 이전처럼 마샬이 측면에 넓게 서 있었다면 영의 크로스는 루니의 머리를 지나 스완지시티 수비에 의해 차단됐을 가능성이 높다. 후반 32분 루니의 결승골 장면도 비슷하다. 마샬이 측면을 돌파하자 루니가 거리를 좁히며 침투했고 환상적인 백힐슛이 나왔다. 판 할은 이 장면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다.
“마샬은 1골 1도움을 기록했고 루니는 좋은 플레이를 했다. 특히 골문을 향해 달리는 장면이 중요했다. 그로인해 공간이 만들어졌고 공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루니에게 항상 마샬과의 거리를 좁히라고 주문했다. 스완지시티전은 그것이 잘 된 경기”라고 평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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