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경기 도중 시시각각 전술을 바꿀 수 있다면 감독은 매우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조직력이 강조되는 축구에서 포메이션과 시스템의 잦은 변화는 밸런스에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유럽에서도 대부분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한 시즌을 소화한다. 전술이 자주 바뀐다는 건 무언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바르셀로나(스페인)와 바이에른 뮌헨(독일)에서 현대 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예외의 인물이다. 토탈축구의 영향을 받은 과르디올라는 상대의 예측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길 원했다. 원톱과 폴스나인(false nine:제로톱), 백포(back four:4인 수비)와 백스리(back three:3인 수비)를 넘나든 전술적인 유연함은 그를 최고 감독 반열에 올려놓았다.
신태용 감독을 과르디올라와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의 변화무쌍한 전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예멘전을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8강 이후 상대팀들이 한국을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전술을 바꿔 혼란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4-2 다이아몬드 포메이션을 사용해 2-1 승리를 거뒀던 우즈베키스탄전과는 다른 전술을 사용하겠다는 예고이자 향후 상대팀에 따라 다른 전략을 내놓겠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신태용은 최전방에 황희찬을 세운 4-1-4-1을 가동했다. 원톱 아래 10번(공격형 미드필더) 성향의 미드필더 4명을 세웠다는 점에서 4-1-4-1로 보는 시각도 맞다. 하지만 찰나의 포메이션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이는 4-3-3이면서도 4-1-5 같은 독특한 그림을 그렸다.
#선발 명단
우즈베키스탄전과 비교해 3명이 바뀌었다. 진성욱, 문창진, 송주훈이 빠지고 김승준, 권창훈, 정승현이 들어왔다. 경기 후 신태용은 “김승준은 국내 훈련 때부터 몸이 좋았는데 1차전을 뛰지 못했다. 예멘전에 선발로 내보내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움직임이 좋았고 골까지 넣어서 아주 만족스럽다. 또 권창훈은 컨디션이 90% 올라왔다고 해서 90분 풀타임을 무조건 뛰도록 했다. 그런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심리적 부담을 훌훌 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코뼈 부상을 당한 송주훈에겐 휴식을 줬다고 설명했다.
#포메이션
신태용 감독은 예멘전 포메이션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4-1-4-1 포메이션을 사용했냐는 질문에 “우리는 상대팀에 따라 전술을 바꿀 수 있다. 선수 교체에 따라 4-3-3, 4-4-2, 4-1-4-1을 쓴다. 선수들이 전술 변화에 녹아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예멘전 포메이션은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했다. 찰나의 포메이션이 모두 달랐다는 얘기다. 그 중심은 박용우를 제외한 가운데 ‘4명’의 미드필더에 있다.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류승우, 김승준, 권창훈, 이창민은 매우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지를 보여줬다. 그로인해 한국의 포메이션은 이것이 “4-1-4-1이다” 혹은 “4-3-3이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기본적인 콘셉트는 4-3-3으로 보는 게 맞다. 후방에서 한국이 공을 소유한 뒤 공격을 전개할 때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다. 박용우가 빌드업 작업을 시작할 때 권창훈, 이창민은 박용우과 역삼각형을 이뤘다. 특히 이창민이 더 자주 내려와 공격 전개를 도왔다. 이때 류승우, 김승준은 황희찬 좌우에 포진해 스리톱을 이뤘다. 하지만 공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온 뒤에는 4명의 미드필더가 수시로 위치를 바꿨다. 김승준이 내려오면 권창훈이 올라갔고 류승우가 사이드로 빠지면 이창민이 전진했다. 이 뿐만 아니다. 우측에 있던 김승준이 좌측으로 이동하면 권창훈이 사이드로 빠지고 좌측에 있던 이창민이 권창훈 자리로 옮겨갔다. 동시에 황희찬이 측면으로 파고들면 류승우가 원톱 자리로 갔다. 마치 포지션이 돌고 돌듯이 끊임없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예멘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술 포인트다.
#권창훈
권창훈의 해트트릭은 돌고 도는 포지션 체인지가 만든 결과물이다. 전반 13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박용우가 전진패스를 하는 순간 앞에 있던 권창훈이 앞으로 달리자 예멘 미드필더 모하메드 보크샨은 따라 이동했다. 이때 김승준이 내려와 공을 잡았다. 그리고 기막힌 터치로 방향을 전환한 김승준은 상대 백포와 미드필더 사이에 있던 황희찬에게 패스를 찔러줬고 황희찬 역시 한 번의 턴 동작으로 공의 방향을 상대 진영으로 바꾼 뒤, 박용우가 패스를 한 순간부터 전방으로 이동했던 권창훈에게 완벽한 1대1 찬스를 제공했다.
전반 31분 추가골 장면도 거의 유사했다. 권창훈이 중앙에 있다 앞으로 달려가면서 예멘 미드필더를 유인했다. 그 사이 권창훈 자리로 내려온 김승준이 상대 방해 없이 공을 소유했고 전방에 있던 류승우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이후 공은 이슬찬에게 흘러 크로스가 올라왔고 권창훈이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전반 41분도 다르지 않다. 황희찬이 좌측 사이드로 이동하며 예멘 센터백을 유인했고 어느새 원톱 자리로 이동한 류승우가 반대편에서 쇄도하는 권창훈에게 찬스를 제공했다. 이처럼 유기적인 포지션 변화에 예멘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한국 선수를 쫓기에 급급하면서 공간을 자주 허용했다.
#후반전
후반 시작과 함께 이창민 대신 문창진이 들어오면서 포메이션도 4-4-2 다이아몬드로 바뀌었다. 황희찬, 김승준이 투톱을 이뤘고 류승우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 역시 기본적인 콘셉트에 불과했다. 찰나의 포메이션은 계속해서 바뀌었기 때문이다. 류승우가 올라가면 김승준이 내려왔고, 권창훈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동하면 문창진이 측면으로 빠졌다. 예멘은 여전히 누구를 마크해야 하는지 헷갈렸고 두 골을 더 실점했다.
#신태용
5골 차 대승을 거둔 신태용은 경기 후 “감독이 원하는대로 선수들이 잘 움직여줬다. 한 포메이션에 선수들이 얽매이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른 팀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들의 전술적인 이해도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는 신태용 감독이 당초 바라던대로 상대팀들에 엄청난 혼란을 주고 있다. 3차전 상대인 이라크 감독은 한국에 대해 “매 경기 다른 전술을 사용한다”며 상당히 까다로운 팀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4-3-3, 4-4-2, 4-1-4-1 등 숫자로 보여지는 정지된 포메이션보다 경기장 안에서 수시로 바뀌는 찰나의 포메이션이 더 위협적인지도 모른다. 전술에 상관없이 미드필더들의 공간 이동을 중시하고 풀백의 전진으로 측면에 강점을 가져가는 콘셉트는 같기 때문이다. 다만 최약체로 평가되는 예멘의 전력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전술 변화에 대응하기에 예멘의 공수 간격과 수비적인 포지셔닝은 분명히 수준 이하였다. 그런 점에서 조 1위를 다툴 이라크전은 신태용호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대한축구협회]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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