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꿈꾼 영화다. 이냐리투 감독이 “내 평생 예술적으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과 자평했는데, 과연 그렇다.
그는 영화 촬영 형식에서부터 자연 그대로를 담아냈다. 요즘은 할리우드 기술이 발달해 많은 부분을 디지털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냐리투 감독은 아날로그 정신을 극대화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는 루베즈키 촬영감독과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영화 속 시간의 흐름대로 촬영할 것.
2. 인공조명은 사용하지 않을 것.
3. ‘버드맨’처럼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된 롱샷에 도전할 것.
온화한 기후와 맑은 날씨의 조건에서라면 대단할 것이 없는 원칙이다. ‘레버넌트’는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촬영했다. 자연광을 이용하느라 하루 촬영 시간이 제한됐고, 제작기간이 늘어났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실제 들소의 생간을 씹어 먹었다. 감독과 스태프, 배우 모두 자연과 융화돼 영화를 만들었다.
이냐리투 감독이 엄격한 형식을 지킨 이유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 앞의 초라한 모습부터 자연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고 생존을 지켜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더불어 숨쉬며 살아가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담아냈다.
모든 것을 잃은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무덤에 버려졌다가 다시 살아난 인물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곰의 습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역설적으로 들소의 생간과 말(馬)의 외피 등 자연의 도움으로 죽음을 극복해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휴 글래스는 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되새긴다.
자연 앞의 나약한 인간이므로, 복수도 신의 영역이다. 휴 글래스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피츠제럴드(톰 하디)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감수한다. 그는 성치 않은 몸으로 길을 가다가 한 인디언을 만난다. 그 인디언 역시 자식과 가족을 잃었다.
인디언:가슴은 찢어지지만 복수는 신의 일이지.
휴 글래스:복수는 내 손에 달린 일이 아니야. 신의 일이지.
복수는 그 자체로 역설을 품고 있다. 예컨대,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을 떠올려보라. 그의 삶은 온통 오대수(최민식)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이우진이 복수에 성공하는 순간, 그가 살 이유는 없어진다. 복수는 그 대상에게 스스로 묶여 살 수 밖에 없다. ‘복수의 역설’이다.
‘레버넌트’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영화다. 휴 글래스는 ‘복수의 역설’에 걸렸지만, 자연의 위대한 가르침을 체화하면서 그 덫에서 빠져 나온다. 그도 어느 누군가 또는 개체에게 복수의 대상이었으니까.
‘레버넌트’의 오프닝신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사냥하는 휴 글래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클로징신에선 하류로 흘러내리는 강물을 비춰준다.
상선약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한다. 복수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레버넌트, 올드보이 스틸컷. 사진제공=20세기 폭스, 쇼이스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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