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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지장(指章)이라도 찍고 가죠?"
김순옥 작가의 사무실. 김 작가는 첫 미팅 후 떠나려던 배우 윤현민을 불러 세웠다. "지금 어떤 작품들 들어왔는지 아는데, 나랑 잘해볼 생각 없어요?" '왔다! 장보리' 등 숱한 히트작을 내놓은 기라성 같은 스타 작가. 윤현민은 당시 '김순옥 작가님이 나를?' 했다며 "너무 영광이었다"고 돌아봤다.
윤현민은 김 작가의 MBC 드라마 '내 딸, 금사월'에서 남주인공 강찬빈으로 51회를 내달렸다. 감정선의 폭이 워낙 커 한 치 앞을 연기하기 힘들었으나 김 작가에게 따로 연락하지도 않았다. 막장 논란 속에 대본을 써내려 가는 김 작가가 '오죽 힘드실까' 걱정된 까닭이다.
김 작가가 윤현민을 믿었고, 윤현민도 김 작가를 믿었다. 연말 시상식 후 선배 배우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김 작가는 "배우들이 나 때문에 고생한다. 다 내 탓이다" 자책했다. 그때 윤현민은 김 작가가 흘린 눈물에서 진심을 봤다.
"작가님 작품을 보면 강한 성향이실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정말 여리고 눈물 많은 소녀 같으신 분이에요."
야구선수 출신. 배우로 전향했을 당시만 해도 그 꼬리표를 떼고 싶어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던 그 배우를 선택한 김 작가였다. 윤현민은 보답이라도 하듯 대본을 믿고 연기해 시청률 30%가 넘는 놀라운 성적을 일궜다.
"그 시청률이 무섭고 소름 돋더라고요. '진짜, 연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겠다' 싶었죠. 다 선배님들 덕분이에요. 엄마(전인화), 아버지(손창민)가 아들 대하듯 알려주셨거든요."
배우 백진희와의 호흡도 큰 몫 했다. 엇갈린 운명을 모른 채 티격태격하며 정들어가는 찬빈과 사월(백진의) 덕에 극 초반 많은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
백진희와는 6개월 넘게 함께하며 실제로도 꽤 정들었다. 대기 시간 중 짬을 내 가구 매장에 같이 갔다 목격되는 바람에 열애설도 불거졌다.
"실은 그때 왠지 낌새가 좋지 않더라"며 웃은 윤현민은 "서먹해질까 봐 걱정했는데 현장에선 오히려 웃음이 빵빵 터졌다. 사실 그때 그 이야기보다 대본 이야기 하기 더 바빴다"고 한다.
제작진이나 배우들도 모두 윤현민을 좋아할만했다. 다정한 남자였다.
과거 한 작품에서 만난 배우 정경호와 단둘이 미국, 스페인을 여행 다니는 사이가 됐을 정도니 그의 친화력도 알 수 있다. 하물며 둘은 숙박비 아끼려고 팬티만 입고 나란히 한 침대에 누워 잘 정도의 막역한 사이였다.
'열심히 하면 10년 뒤에는 알아보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배우 생활이다. 그래서 꿈도 매 타석 담장을 넘기는 대형 홈런 타자가 아니다. 꾸준히 출루하려고 한다. 자신보다 팀이 빛나길 바란다. 무엇보다 갓 배우가 되었던 시절부터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마냥 고마운 배우다.
"'내 딸 금사월' 종방연 후 집에 와서 팬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그때 한 팬 분이 남기신 댓글에 순간 울컥했어요. 왠지 위로가 되고 마치 그동안 고생한 시간에 보상 받는 느낌이었어요."
윤현민을 울린 팬의 댓글은 이랬다. '우리의 배우였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모두의 배우가 되신 것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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