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2006년 6월 8일, 봉준호 감독은 ‘괴물’ 제작발표회에서 자못 비장하게 말했다.
“아무도 박강두 가족을 도와주지 않는다. 왜 아무도 이 가족을 도와주지 않는가. 거창하게 말한다면 우리가 이런 약한 사람들을 도와 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점을 묻고 싶었다.”
그는 한국사회의 ‘각자도생(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꾀함)’을 지적했다. ‘살인의 추억’은 국가 시스템의 마비 속에서 모던한 연쇄살인마가 부녀자의 목숨을 유린한 실화를 다뤘다. ‘괴물’ 역시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력 속에 괴물과 홀로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박강두 가족의 사투를 담았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8월. 봉준호 감독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뜨겁다.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리얼 재난극 ‘터널’ 역시 17일 현재 350만을 넘어섰다.
‘부산행’에서 국가는 비상재난사태가 발생했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언론은 좀비떼를 폭도로 규정하고, 방송을 통해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KTX 승객들은 몰려드는 좀비떼를 스스로 물리치고 각자도생을 해야만하는 상황에 처한다.
‘터널’의 자동차 영업사원 정수(하정우)는 무너질 터널 안에서 무려 39일 동안 버틴다. 건설사는 자재비를 빼돌려 부실시공으로 붕괴 원인을 제공했다. 국가는 “반드시 구하겠다”고 떠들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장관은 기념사진 찍는 데 몰두하고, 밑에 직원은 장관 눈치 보느라 바쁘다. 구조대책 본부는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언론은 사람 목숨 보다는 특종에 열을 올린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의 화두는 ‘각자도생’이었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는 국가의 불신을 키웠다. 치솟는 청년 실업률과 상시적 구조조정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올해는 지속적인 경제 불황에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까지 터졌다. 기업 상품도 못믿는 세상이다. 국가도, 기업도 신뢰할 수 없는 불신의 정글이다.
우리는 모두 ‘부산행’ KTX 열차에 갇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전방에 터널입니다. 오늘도 안전운전 하십시오”라는 영화 ‘터널’ 속 기계음이 유난히 서늘하게 들린다.
[사진 제공 = NEW, 쇼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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