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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손연재(연세대)가 두 번의 올림픽 도전을 마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인종합 5위에 이어 2016년 리우올림픽 개인종합 4위를 차지했다. 끝내 아시아 최초 올림픽 리듬체조 메달리스트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손연재는 리우에서 17년 리듬체조 인생서 쌓아온 모든 내공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손연재는 2010년부터 시니어 무대에 뛰어들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시작으로 2011년 몽펠리에 세계선수권 11위를 차지하며 꿈에 그리던 런던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아시아인 최초로 결선 진출에 성공하며 좋은 경험을 쌓았다.
런던에서 가능성을 타진한 손연재는 본격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엘레나 리표드도바 코치의 엄격한 지도 속에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센터에서 강훈련을 소화했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1달도 버티지 못하지만, '독종' 손연재는 버텨냈다. 그 속에서 조금씩 성장했다. FIG(국제체조연맹)가 리듬체조 채점규정을 계속 바꾸면서 더 완벽한 연기를 요구했지만, 손연재는 극복해냈고, 자신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했다.
훈련만 한 게 아니다. 런던올림픽 전후로 엄청난 국제대회 스케줄을 소화했다. 톱랭커들이 컨디션 조절로 선택과 집중을 할 때, 손연재는 2월 모스크바 그랑프리부터 여름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거의 모든 월드컵시리즈를 소화했다. 국제대회 경험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았고, 실전 경험을 통해 약점을 철저히 보완했다.
서서히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2015년 제천, 2016년 타슈켄트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연이어 휩쓸었고, 2014년에는 리스본 월드컵서 처음으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톱랭커들이 빠졌지만, 손연재의 비약적 성장이 입증된 사건이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2관왕, 광주 유니버시아드 3관왕 등을 통해 아시아 리듬체조 역사를 바꿔놓았다.
지난 2~3년간 연기 난도를 높이고 적응했다면, 올 시즌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키웠다. 실수를 줄이고, 빡빡한 시즌 일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댄싱스텝을 추가하고, 포에테 피봇할 때 발목을 꼿꼿이 세우는 등 스스로 따낼 수 있는 점수는 다 따내는 전략을 시도했다. 올림픽이 채점기준이 엄격해 실수를 줄이고 안정적인 연기를 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올 시즌 국제대회서 18점대 중반을 밥 먹듯 찍는 세계적인 톱랭커로 거듭났다.
그러나 메달에는 한 발이 모자랐다. 세계랭킹 공동 1위 마르가리타 마문, 야나 쿠드랍체바(러시아)는 애당초 손연재에겐 '넘사벽'이었다. 손연재의 동메달 라이벌 안나 리자트디노바(벨라루스)는 사실 손연재보다 한 수 위의 선수다. 손연재로선 최선을 다했지만, 후발주자로서 판을 뒤엎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손연재가 지난 4년, 아니 리듬체조 인생 17년간 쏟아냈던 열정에 박수를 보내도 된다. 리듬체조는 동양인에겐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 벽을 거의 깨트릴 뻔하다 조금 부족했을 뿐이다. 비록 두 차례 올림픽서는 입상에 실패했으나 아시아인 최초로 2회 연속 결선에 나갔다. 그리고 각종 월드컵시리즈와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등에서 수많은 아시아 최초,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손연재는 리우에서 마지막 연기를 마친 뒤 눈물을 펑펑 흘렸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이제 그 눈물과 함께 아시아 리듬체조 영웅을 보내줄 때다. 손연재는 한국과 아시아 리듬체조사를 새로 썼다. 자신을 이겨냈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손연재. 사진 = 리우(브라질)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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