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여동은 기자] 관람객 수 5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1987’이 연일 화제다.
‘1987’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냈던 사람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더욱 흥행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나 1987년을 치열하게 살았던 50~60대 들이 자녀들과 관람하는 트렌드까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를 치열하게 살았던 부모세대와 10대~20대 자녀들의 관람 후 반응은 천양지차인 것 같다. 모 신문에 게재됐던 칼럼의 일부를 인용하면 관람 후기 반응은 이렇다. 부모들은 극장을 나온 후에도 먹먹한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반면 자녀는 ‘내일은 신과 함께 보여줘’라는 반응이었다는 것.
1987년 당시를 살았던 기자도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됐다. 당시 대학가는 분위기가 암울했다. 학원 내에 사복 경찰이 들어와 있기도 했고 시위를 하면 백골단을 앞세운 진압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대며 학내로 들어와 강의실까지 난입해 교수가 지켜보는 데도 시위 학생을 끌고 나가곤 했다.
평일 낮 12시 점심 시간이 시작될 즈음이면 도서관 4층에서 학생이 창문 난관을 붙잡고 유인물을 뿌리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일상화된 학교는 상아탑의 이상과 사회의 현실이 부딪히는 치열한 현장이었다.
1987년은 1월 고 박종철군 고문치사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4.13 호헌철폐가 기름을 부었으며, 6월9일 고 이한열군의 최루탄 피격에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지금의 롯데백화점 앞 명동거리에 나와 ‘호헌철페 독재타도’를 외치기도 했다. 분위기는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넥타이부대들이 건물 창을 통해 응원하기도 했고, 일부는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동참했다. 결국 7월9일 고 이한열군 장례식에는 서울광장에 민주화를 염원하는 백만 명의 인파가 모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1987년을 살았던 젊은이들이 모두 시위를 하고 돌을 든 것은 아니었다.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갔던 젊은이들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료 선후배들이 최루탄 속에서 시위를 할 때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있었던 학생들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직접 돌을 들지는 못했어도 심정적으로는 동조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 시위에 직접 참여하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마음의 빚이다. 여전히 살아나가면서 계속 갚아 나가야 할 삶의 빚이다.
1980년대를 다룬 영화 ‘보통사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장혁(최규남 분)은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엘리트 검사로 승승장구 하다 최연소 국가안전기획부 실장에 오른 권력지향적 인물이다. 장혁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다 언론인을 고문 치사해 검찰에 넘겨진다. 검사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장혁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신념에 찬 듯 이렇게 말한다. “착각하지마. 세상은 바뀐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하지만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신념이 그들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3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
1987년을 살았던 젊은이들은 언제 또 내 친구가, 내 동기가 부조리한 권력에 맞서다 희생될까 가슴이 항상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영화 ‘1987’의 엔딩 곡 ‘그날이 오면’을 관람석에 앉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미안함에 눈물이 날까봐....
여동은 기자 deyu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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