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투수가 제일 잘 던지는 공은 타자들이 알고 있다."
키움 포수 이지영은 한국시리즈 통산 19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포수다. 통산 26경기에 나선 KBO리그 최고포수 양의지(NC) 다음으로 한국시리즈 경험이 많다. 삼성왕조 시절 경험이 올해 한국시리즈 준비에 큰 도움이 된다.
이지영은 22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박동원이 에릭 요키시의 선발등판에 맞춰 오랜만에 선발 출전했다. 아마도 이지영은 벤치에서 두산 타자들의 컨디션을 철저히 체크하면서, 2차전 선발투수 이승호와의 볼배합을 머리에 그렸을 것이다. (이지영은 이승호의 전담포수다)
이지영은 1차전을 앞두고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는 투수가 잘 던지지 못하거나 좋지 않은 공을 던지게 할 생각도 있다"라고 했다. 포스트시즌은 매 순간이 승부처다. 볼배합의 중요성이 정규시즌보다 훨씬 더 크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투수가 가장 잘 던지는 주무기를 던져야 얻어맞더라도 후회가 덜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배터리의 볼배합은 일종의 '가위, 바위, 보' 싸움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굳어진 메뉴얼은 있다. 그러나 수 많은 세부 상황에 대한 완벽한 해법은 없다. 오로지 타격 결과로 평가 받는다. 그 어떤 배터리도 모든 타자를 범타 혹은 삼진으로 봉쇄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지영은 "투수가 제일 잘 던지는 공은 타자가 이미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타자는 당연히 투수의 주무기를 염두에 두고 타석에 들어선다. 허를 찌르자는 의미. 그는 "정규시즌에는 투수가 자신 있는 공을 던지는 게 맞다. 얻어맞아도 다음 경기서 다시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은 공 한 개로 승부가 갈린다. 타자를 복잡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공 한 개로 승부가 갈리는 단기전이라면, 때로는 승부처에 평소에 많이 사용하지 않던 구종으로 타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도 승부수라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1군 투수들이라면 주무기가 아닌 구종도 던지는 방법은 안다. 완성도의 문제다. 도저히 실전서 던지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과감한 역발상도 필요하다는 게 이지영의 생각이다.
이지영과 주로 호흡을 맞추는 제이크 브리검의 경우 시즌 막판 스플리터성 체인지업을 장착,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지영은 "타자들은 브리검의 슬라이더와 커브에 대비한다"라고 말했다. 타자로선 브리검의 체인지업 장착을 알고 있어도 상대한 경험이 적으니 막상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대처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지영이 노리는 게 이런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리 볼배합 방향을 공개해도 되는 것일까. 이지영은 여유가 넘쳤다.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 그대로 주무기를 던지게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당일 타자들 컨디션을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신중한 자세다.
경험의 힘이다. 이지영은 "예전 삼성 시절에 좋은 투수들과 함께 하면서 느낀 점도 많고, 얘기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시대를 풍미한 국가대표급 투수들과 호흡을 이루면서 포수로서 스펙트럼을 넓혔다. 올해 키움 마운드의 안정화에 보탬이 됐다.
키움은 1차전서 상처가 큰 패배를 안았다. 2차전 이지영-이승호 배터리의 책임감이 막중하다. 나아가 이지영이 3차전 선발등판이 예상되는 브리검과 어떤 볼배합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정규시즌 두산전과 비슷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지영이 두산 타자들에게 일종의 미끼를 던졌다.
[이지영.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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