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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스스로 땅굴을 팠어요."
WKBL 최고의 가드 우리은행 박혜진. 그동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었다. WKBL서 펄펄 나는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만 나가면(특히 세계대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내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까지 있었다.
농구관계자들, 지도자들의 여러 평가 및 견해가 있다. 운동능력의 장점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국제대회서 능숙하게 활약할 정도의 테크니션은 아니라는 분석, 위성우 감독의 지도에 익숙해 우리은행과 환경이 다른 대표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평가도 있었다. 뭐가 '확실히 옳다'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어쨌든 박혜진은 국제대회서 거듭된 부진에 위축되고 작아졌다.
박혜진도 이런 비판을 알고 있다. 농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다. 마음고생이 상당했다. 하지만,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 WKBL이든, 국제대회든 한국여자농구에 박혜진을 대체할 선수는 없다. 여전히 한국여자농구에 박혜진은 가장 믿음직한 공수겸장 가드이자 해결사다.
그런 점에서 14일 중국과의 2020 도쿄올림픽 프레 퀄러파잉 토너먼트 A조 첫 경기 결승 레이업슛은 의미 있었다. 한국에 오랜만에 중국전 승리를, 나아가 퀄러파잉 토너먼트 티켓을 가져온 한 방이었다.(그 레이업슛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한국여자농구의 도쿄올림픽은 끝났다. 뉴질랜드에 졌기 때문이다)
박혜진은 "스틸을 하고 치고 넘어왔는데, 전부 공을 안 보고 고개를 숙이고, 도망가더라. 공을 받아달라고 얘기 하려다 보니 (박)지수가 다가왔다. 패스를 달라는 자세가 아니라 픽(스크린)을 해주러 왔다"라고 돌아봤다.
그 순간 박혜진은 자신이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지수의 스크린을 받아 왼쪽으로 치고 들어가 왼손으로 레이업슛을 넣었다. 본인의 주특기. 중국 수비수가 팔을 뻗었으나 박혜진의 왼손을 떠난 공은 팔을 뛰어넘어 백보드를 맞고 림에 빨려들어갔다.
박혜진은 "미루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던졌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었는데 뭐가 무서웠겠나. 안 들어가면 또 욕 먹자 싶었다. 들어가서 좋다는 느낌보다 다행이었다"라고 돌아봤다. 그렇게 박혜진은 국제대회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냈다.
그동안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박혜진은 "대표팀만 다녀오면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멘탈 자체가 나갔다. 체육관에 가기도 싫었고, 다시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이게 내 한계구나', '대표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싶었다. 땅굴을 스스로 팠다. 위성우 감독님은 '내가 못 가르쳐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님, 코치님, 응원해준 우리은행 선수들에게 미안해서 쳐다볼 수도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위성우 감독은 프레 퀄러파잉 토너먼트를 앞두고 박혜진에게 "대표팀에 능력 좋은 선수가 많으니 네가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내려놓고 물 흐르듯이 해라"고 했다. 대표팀 컴플렉스에 스트레스가 극심한 제자를 배려한 말이었다.
마음을 비웠다. 박혜진은 "마침 팔도 좀 아프니 마음을 내려놨다. 핑계거리가 생겼다 싶었다. 무리하게 하지 말고 동료를 살려주려고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털어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을 인정했다. 박혜진은 "(김)정은 언니와 항상 얘기한다. 우리나라 농구선수들 중에 우리가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는다고. 정은 언니는 '그렇게 연습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 치고 우리는 농구를 참 못한다'라고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박혜진은 "처음에 팬들이 내 욕을 할 때 '왜 사람들이 나한테만 뭐라고 하지?'싶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오죽 잘 했으면 하는 마음에, 안타까워서 그렇게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이 욕하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극복했다"라고 했다.
한국여자농구는 내년 2월 도쿄올림픽 퀄러파잉토너먼트라는 아주 중요한 관문이 있다. 박혜진이 그 무대서 또 한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면 '국제용'으로 불려도 된다.
[박혜진. 사진 =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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