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새들이 지저귈 때마다, 개들이 짖을 때마다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어떤 말들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 건지.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봐도 우리말로 대답을 안 해주니 답답도 했다. 이렇게 상상만 해봤던 동물과의 대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인간이 해석한 그들의 언어가 정답은 아니지만 눈빛과 몸짓으로만 추측하던 속내를 끄집어내 소통을 본격화하니 괜히 더 반갑고 묘한 쾌감까지 인다. 우리의 말이 아니란 이유로, 말하지 못하는 동물 취급을 받았던 그들의 마음에 한 걸음 더 닿았다.
정해진 식단에 따라 밥을 먹고 먼지 하나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 성향의 주태주(이성민)는 유능한 엘리트 국가정보국 요원이다. 내내 현장에서만 뛰다가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돌연 판다를 지키게 생겼다. 무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아 친히 입국하신 특사, VIP 판다(유인나)다. 국가의 명령이니 따라야 하지만 문제는, 주태주는 동물 혐오자다. 딸이 냅다 품에 던지고 간 고양이도 무참히 버리고 떠나는 수준이다. 그래도 승진은 해야 하니 VIP 보호에 나섰지만 의문의 집단으로부터 판다를 빼앗겼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로 태주에게 징벌과도 같은 능력이 생긴다. 각종 동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태주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태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자신이 혐오했던 동물밖에 없다. 기필코 판다를 찾아서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태주는 고릴라(이정은)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핵심 목격자인 군견 알리(신하균)와 만난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온갖 집안을 헤집어놓으며 변덕도 심한데, 어째서 밉지가 않다. 정은 쌓여가고 호흡도 찰떡이 된 이들은 완벽한 공조수사를 펼치며 최고의 콤비로 거듭난다.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감독 김태윤)는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태주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판다를 구해내는 이야기다. 다소 허무맹랑한 판타지 같지만 한국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소재라 구미가 당긴다. 무엇보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이웃 동물, 그러나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발화만 이뤄졌던 관계를 김태윤 감독이 비틀어 유쾌하게 코미디 영화로 완성했다.
일단 동물들이 말을 하니 신선하고도 웃음 터지는 장면이 다수다. 여러 동물들이 한데 모여 인간처럼 모닥불을 피우는가 하면, 토론의 장을 열어 각종 대화를 나눈다. 다양한 말투로 자기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이리저리 떠들기도 하고 인간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의연하게 내뱉기도 한다. 유머러스한 표현이었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동물들의 입에서 듣는 건 퍽 가슴 아프고 미안한 장면이었다.
동물들의 기발한 대사가 연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확했다. 동물과의 상생이다. 단순히 귀여워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뜨끔할 대사가 많다. 과시하기 위한 장식품마냥 반려동물을 분양하고 소비하는 행태를 악인을 통해 꼬집는다. 영화 '재심'(2017), '또 하나의 약속'(2013)으로 빛바랜 사회를 그려내고 희망을 소원했던 김태윤 감독이 코미디 장르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잃지 않았다.
알리를 비롯해 수많은 동물과 뒹굴면서 교감하게 된 태주의 성장은 몹시 따뜻하다. 동물들은 역시 관대하고, 선(善)의 위치다. 알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태주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내 탓이지"라고 말하며 그저 놀아달라고, 신이 났다. 용서도 쉽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이 쓰라리다.
가족 단위를 관람 타깃으로 잡은 만큼 영화는 기승전결이 뚜렷하며 친절하고 다정하다. 다만 장르에 충실하려 한 탓인지 과도한 부분들이 일부 있고 완성도 면에서 아쉽다. 특히 만식 역의 배정남이 큰 흠이다. 그의 등장씬마다 억지 코믹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흐름이 뚝뚝 끊기고 몰입을 방해한다.
이 틈을 채우는 건 이성민이다. 태주 역의 이성민은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했다. 상대는 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간과 호흡하듯 완벽히 능청스러웠다. 실제로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소화력을 자랑했다. 민국장을 연기한 김서형은 예상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 분량은 적지만 김서형의 새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배정남은 신하균, 유인나, 이정은, 이선균, 김수미, 이순재, 박준형, 김보성 등 동물들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들을 파헤쳐보는 재미도 있다.
착하고 무해한 코믹 영화다. 설 연휴에 함께 볼 가족 영화로 제격이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 오는 22일 개봉.
[사진 =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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