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코미디와 사랑에 빠져 영화감독까지 꿈꾸게 됐다는 최원섭 감독은 천신만고 끝에 꿈을 이뤘다. 이는 포기 않고 꿈을 좇는 영화 '히트맨'(감독 최원섭)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상업 첫 데뷔작임에도 불구, 흥행에도 자신감을 보여 영화를 향한 깊은 애정을 엿보게 했다.
최원섭 감독은 29분 단편영화 '되면 한다'(2004)로 데뷔, '보람이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2006), '불타는 내 마음'(2010) 등으로 재기발랄한 성격의 영화를 연출해왔다. 오래된 연인의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절묘한 코미디로 녹여낸 '보람이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제6회 미장센 단편영화제의 관객상을 수상했다. '내 사랑 내 곁에'(2009) 각본을 맡기도 했다.
이후 최 감독은 '히트맨'으로 돌아와 묵혀놨던 코미디 한을 다 풀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히트맨'은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한 전설의 암살요원 준(권상우)이 그리지 말아야 할 1급 기밀을 술김에 그려 버리면서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더블 타깃이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액션 영화. 웹툰, 애니메이션, 실사를 오가는 장르 변주를 선보이며 다채로운 재미를 챙겼고, 웃음 폭탄을 안기는 유머코드와 타격감 있는 액션도 가미해 설 연휴에 어울리는 종합선물세트를 완성했다.
개봉을 앞두고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만난 최 감독은 "상업영화 개봉은 처음이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기 때문에 만족스럽고, 빨리 관객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문을 열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부터 제작까지 약 3년 걸렸다. 다른 영화들이 중간에 많이 엎어졌다. 될 것 같았는데, 직전에 엎어진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히트맨'까지 오게 됐다. 이 영화로 꿈을 좇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 역시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좇고 있었지만 현실이 쉽지 않았다. 제가 느낀 것들을 영화에서 희망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상업영화이니 소재적인 면에서 액션이 들어가길 바랐다.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웹툰 작가였다. 시나리오 작가랑 비슷하지 않나. 비주얼적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또 국정원을 결합시키면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을 것 같더라. 제가 지루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히트맨'은 진중할 법한 순간에도 유머를 부여, 꾸준히 코미디 라인을 유지한다. 최 감독은 "의도한 것"이라며 "영화를 만들 때, 정말 재미있게 만들자는 결심을 하고 찍었다. 억지 신파를 되게 싫어한다. 재미있게 가다가 마지막에 울리려고 하는 거 있지 않나. 납득이 되면 좋은데,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안 좋아한다"며 "갑자기 심각했다가 웃겼다가 하는데, 그런 톤 조절을 잘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확신이 안 될 때는 버전을 여러 개로 찍어놓고 편집 과정에서 선택했다. 그래서 '한 번만 더'를 계속 했는데, 배우 분들이 너무 잘해주셨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중 등장하는 국정원 내 비밀 병기 집단 '방패연' 설정에 대해서는 "상상이다. '킹스맨',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영화에서도 그런 집단들이 나오지 않나. 실제로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며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 팀장님을 만났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주지 않으신다. 그냥 '너무 나쁘게 그려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부탁 정도만 하셨다"라고 전했다.
코믹, 액션 고수로 평가되는 권상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작업했다는 최 감독은 "아예 준을 권상우 씨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액션과 코믹 분야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들도 액션을 하고 계시지만, 화려한 액션을 할 때 누가 제일 잘 하고 웃길지 생각했을 땐 권상우 씨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권상우 씨도 출연을 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전설의 악마교관 출신 덕규를 연기한 정준호에도 큰 만족감을 표출했다. 최 감독은 "정준호 선배님이 정말 잘생기셨지만 코믹 연기도 되게 잘하신다. 코믹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연기를 정말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망가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배우들은 망가지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단 한번도 불편한 내색 없이 연기해줬다. 정준호 선배님은 현장의 큰 형님으로서, 현장의 어른으로서 든든했다. '감독님이 다 맞다'며 뭐든지 시키라고, 자신을 막 쓰라고 하셨다. 끊임없이 좋은 말로 도와주셨다.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인상 한번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무엇보다 최 감독은 배우들이 생각한 연기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도록 가능성을 무한하게 열어뒀다. 덕분에 배우들은 자신이 분석한 대로 애드리브를 마구 발산했고, 캐릭터들의 매력이 생생하게 살았다. 뛰어난 호흡도 더해져 코믹 시너지가 빛을 발했다. 대다수의 분량이 애드리브였다는 이이경을 놓고선 "시즌2를 하게 되면 대사를 비워둔 채 시나리오를 주겠다고 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관객들이 보는 건 사실 제 시나리오가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다. 만약 제가 여백을 안 주고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으면 어색할 것 같다. 저는 여백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전체적인 방향은 당연히 동의가 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고 편하게 캐릭터가 돼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잘나왔다. 저는 전체를 봐야 하니 디테일한 걸 표현하기가 힘든데, 캐릭터에 이입한 배우 분들이 알맞은 애드리브를 생각해낸다. 이준혁 씨도 거의 다 애드리브였다. 이이경 씨보다 더 많다. 마음대로 다 하시라고 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히트맨'은 코믹 영화이지만 액션씬이 정교하게 짜여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액션 표현은 만족하냐고 묻자 "무술 감독님에게 모든 걸 맡겼다. 콘셉트만 공유했다. 지금 아주 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카체이싱 장면이 더 있었는데 예산 문제로 줄였다. 그래도 코미디가 제일 중요하다. 권상우 씨가 터널에서 여자 요원 목을 조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웃기게 그려진다.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웃긴 장면이 아니었는데 권상우 씨가 재미있게끔 표정을 지었다. 아이디어가 넘쳤다"고 답했다.
이날 연신 코미디를 예찬하던 최원섭 감독이다. 당초 경영학과를 전공했던 최 감독은 코미디 영화 열정 하나로 수능을 다시 봤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는 왜 코미디와 사랑에 빠졌을까.
최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광이긴 했지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20년 전 쯤에 지금은 기억도 안 날, 되게 안 좋은 일이었다. 그 때 우연히 비디오로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를 보게 됐다. 보면서 제가 웃고 있더라. 코미디의 힘을 그 때 알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국내 관객들은 코믹 영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과 재학 당시 교수님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써내라고 하셔서, '덤앤더머'(1994)와 같은 영화들을 냈는데 다들 웃더라. '덤앤더머' 감독은 최근 극찬을 받은 '그린 북'(2018) 감독이다. '행 오버'(2013)도 좋아하는데, 그 감독도 '조커'(2019) 감독이다. 코믹 영화를 좋아하면 왜 웃을까. 이런 부분을 고치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야심찬 포부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지만 순탄하진 않았다. 여러 차례 영화 제작이 무산된 바람에 공백도 길었다. 이 과정에서 겪은 고충과 고민들을 '히트맨' 속 준의 인생으로 표현했다. 최 감독은 "제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제가 결혼을 좀 빨리 해서 아이가 크다. 학교 다닐 때 영화에 대한 평가도 좋아서 졸업하고 바로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자신은 있었지만 가족이 생기니 힘들었다. 영상 관련 일을 하면서 버텨왔다. 남들이 보기엔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 내용이 이 영화에 반영이 됐다. 극중 준은 자신이 하고싶은 걸 찾아 떠났는데, 막상 안 풀리지 않나. 많은 사람들도 그럴 거다. 그래서 위로를 주고 싶었다. 어쩌면 저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전했다.
이어 "저는 제가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했을 뿐, 영화를 향한 마음은 확고하다. 그래서 이번 '히트맨'도 만족하고, 후련하다.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했다"고 강조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히트맨'은 오는 22일 개봉한다.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미스터 주: 사라진VIP'(감독 김태윤) 등 쟁쟁한 기대작들과 경쟁한다. 그럼에도 최 감독은 "자신 있다. '히트맨'에는 '짠내'나는 코미디, 화려한 액션, 가족애가 있다. 꿈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냥 웃기려고만 만든 영화가 아니다. 진심으로 잘 만든 코미디 영화를 내놓기 위해 노력했다.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진심을 다해 완성했다. 관객 분들에게도 이 마음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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