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라미란이 웃기려고 작정했다. 웃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웃길 줄 몰랐다. 원초적인 지점을 파고들어 실소를 유발하는 B급 코미디와는 확연히 다르다. 라미란의 능청스러움에 장유정 감독의 재기발랄한 연출이 더해지니 낡은 것이라고는 없는, 산뜻한 웃음만이 가득하다. 영화 '정직한 후보'의 이야기다.
보험사를 상대로 투쟁하다 정치인이 된 주상숙(라미란)은 어느새 베테랑 3선 국회의원이다. 4선을 노리는 그는 서민들의 안성맞춤이 되기 위해 애쓴다. 물론 겉으로만. 남편 만식(윤경호)과의 뽀뽀 장면이 홍보 영상에 삽입되자 "부부끼리 무슨 뽀뽀야"라며 빼라고 지시한다든지, 기독교 표심을 잡을 수 있는 십자가를 부각시키라고 한다든지 등 이미지 메이킹에 있어선 부족함이 없다. "신부님", "스님", "목사님" 등 상대에 따라 자유자재로 호칭을 바꾸는 넉살도 훌륭하니 정치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타고난 쇼맨십 황제다.
그런 상숙의 곁에는 새 구두를 낡아보이게 하기 위해 열심히 밟아주는 찰떡 호흡의 보좌관 박희철(김무열)이 있다. 철저히 계산된 두 사람의 플레이 덕에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주상숙의 당선은 확실시됐다. 그러나 그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상숙이가 거짓말 좀 안 하게 해달라"라는 할머니 김옥희(나문희)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이다.
'진실의 주둥이'가 터져버린 상숙. 대쪽 같았던 정치 인생이 흔들린다. "나는 서민의 일꾼"이라더니 "서민은 나의 일꾼"이라는 속내가 모두 공개되면서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만으로도 무릎을 꿇게 하던 시어머니에게는 "불청객"이라고 거침없이 내뱉고, 자서전 출간은 "대필이다"며 자폭한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솔직함이 국민에게 통했다. 사탕발림만 늘어놓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주상숙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속 시원한 팩트 폭격을 날려대니 대중은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 신뢰까지 느껴버린다.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이 주특기인 정치인이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폭탄급의 웃음을 안긴다. 웃음의 크기만 다를 뿐, 입가에 지은 미소는 시종일관 유지하게 한다. 극중 라미란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때도, 터져버린 '진실의 주둥이'를 주체하지 못할 때도, 그 변화를 목격한 주변인들의 반응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크게 이 세 가지 상황을 웃음 포인트로 잡으며 반복하는데, 전혀 지겹지가 않다. 매 장면 새롭게 웃기다.
여러 갈래의 웃음으로 뻗치게 하는 데는 단연 라미란의 힘이 크다.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완벽한 완급 조절 덕에 판타지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현실에 콱 박힌다.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구기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과장이 없다. 힘 있게 쇼를 끌고나가는 라미란은 가히 '정직한 후보'의 잔다르크다.
라미란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김무열은 무대 위에서 쌓은 코믹 내공을 발휘해 제대로 된 웃음을 안긴다. 캐릭터 특성상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망가지지는 않으나 라미란의 코미디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나문희는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폭소를 안기고, 손녀 라미란과의 푸근한 케미로 감동까지 책임진다. 남편 역의 윤경호와 아들 장동주도 코미디 톤이 유지되도록 제 몫을 다한다.
무엇보다 '김종욱 찾기', '부라더'로 스크린 연출에 나섰던 장유정 감독은 코미디의 맛을 제대로 파악한 듯 하다. 신파 설정도 신파로 끌고 가지 않고 적정선에서 끊어준다. 기시감이 느껴질 찰나엔 리듬을 변주해 금세 코미디로 돌아온다. 브라질 원작을 국내 정서에 맞게 변형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여실히 느껴진다. 생생한 선거운동 묘사부터 국회의원들의 두 얼굴, 군대 비리, 사학 비리 등을 무겁지 않게 넣어 현실감을 살렸고 극중 국민들의 반응도 트렌디하게 잡아냈다.
특정 정당을 겨냥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상숙의 정당색은 보라색으로 설정했다. 정치 영화가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지만,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풍자가 있다. 모든 게 쇼인 정치판에서, 100% 올곧지 않더라도 최소한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누가 환호하지 않을까. '정직한 후보'는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나마 꿈꾸게 한다. 오는 2월 12일 개봉.
[사진 = NEW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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