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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아직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KB 안덕수 감독이 허예은을 처음 본 건 2018년 여름 영주에서 열린(상주여고 시절) 중고농구연맹 왕중왕전이었다. 언젠가 안 감독은 "조그마한데 다른 애들하고 농구를 하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내가 봤던 경기서 손목을 다쳐서 일찍 빠진 게 아쉬웠다"라고 회상했다.
안 감독은 허예은에게 꽂혔다. 이후 비 시즌에 허예은을 집중적으로 보러 다니면서 '마음 속의 1순위'로 찍었다. 허예은은 3학년이던 2019년 맹활약했고, U19 태국여자농구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거의 모든 팀이 허예은을 주시했지만, KB가 1순위로 허예은을 뽑았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으로 1순위 확률은 가장 떨어졌다. 그러나 올 시즌 직전 신한은행에 김수연을 내줬고, 신한은행의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왔다. 신한은행이 KB보다 1라운드 지명권이 앞설 경우 순번을 교환하기로 했다. 결국 KB가 4.8%의 확률로 1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그렇게 KB는 허예은을 품에 안았다. 안 감독은 시즌 막판 우리은행과 치열한 선두다툼 속에서도 허예은에게 꾸준히 출전시간을 줬다. 안 감독의 안목과 농구관계자들의 전망대로, 허예은은 WKBL에 순조롭게 적응해나가고 있다. 가능성만 놓고 보면 특급신인이다.
WKBL 저연차에게 보이는 '수줍음'이 전혀 없다. 신장도 164cm로 작고 몸도 얇다. 스피드가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코트비전이 넓다. 나머지 9명의 움직임을 모두 살핀 뒤 드리블, 패스, 공격을 선택한다. 당연히 상대는 강하게 압박한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무리하지 않고 다음 플레이를 한다. 볼을 다루는 기술이 좋아 의외로 상대의 강한 압박에도 공을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번뜩이는 패스센스를 보여준다. 지난달 22일 신한은행전서는 염윤아가 5반칙 퇴장한 뒤 심성영과 투 가드를 이뤄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어시스트 5개를 기록했다. 박지수에게 찔러준 랍패스는 백미였다. 스크린을 활용한 뒤 재빨리 미스매치 공격수를 찾아내 공을 넣어주는 건 고졸신인답지 않았다. 2일 하나은행전서 9점 3어시스트, 8일 BNK전 6점 5어시스트 2스틸로 역시 좋았다. 9경기서 평균 10분52초간 3.3점 1.6어시스트 0.4스틸.
허예은은 지난달 22일 신한은행전 직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눅드는 부분을 고쳐서 경기에 임하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라고 했다. 안 감독은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다.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다"라고 거들었다.
KB는 의외로 세트오펜스를 답답하게 풀어가는 경우가 있다. 경기운영에 최적화되거나 패스센스가 좋은 정통 1번이 없다. 심성영은 1~2번을 소화할 수 있지만, 장점은 스피드와 정확한 외곽슛이다. 염윤아 역시 1번이 아니다. 5일 우리은행을 넘지 못했을 때도 막판 승부처에 경기를 조율하고 풀어줄 정통가드가 없는 약점이 드러났다.
해답은 허예은의 성장이다.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과 상대의 집중견제에 대한 대처, 슈팅능력, 팀 디펜스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은 많다. 시간은 허예은과 KB의 편이다. 고졸 신인이 데뷔 시즌에 이 정도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특히 심성영과의 투 가드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둘 다 신장이 작아 장신가드들을 만나면 활용하기 어렵긴 하다. 하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흐름을 돌리고 허를 찌르는 카드로는 손색 없다. 박지수와 카일라 쏜튼의 의존도가 높은 KB에 스몰라인업 옵션이 생겼다.
안 감독은 "예은이를 통해 얼리오펜스, 2차 속공이 더 나오면 좋겠다. 우리 팀 수비에 로테이션이 많은데, 어느 타이밍에 스위치를 하고 반대 사이드로 넘어가야 하는지 익숙하지 않다. 연습을 통해 더 좋아질 것이다. 다른 1~2년차보다 훌륭한 신인이다. 지금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KB는 정규경기 2연패가 물 건너갔다. 그러나 허예은의 가능성을 확인한 건 위안거리다. 허예은을 지켜본 한 농구관계자는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라고 했다.
[허예은. 사진 = WKBL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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