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영화 '블랙 스완'(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를 연상케 한다. 들끓는 욕망이 육신을 지배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성질에 잠식되어가는 과정, 영화 '디바'(감독 조슬예)가 신민아의 얼굴을 빌려 완성했다. 둥글둥글한 인상으로 사랑스러움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신민아는 데뷔 이래 가장 뾰족한 모습을 하고 스크린에 나섰다. 미시감 가득한 신민아의 얼굴이 '디바'를 정의했다.
이영(신민아)과 수진(이유영)은 오랜 친구이자 다이빙 동료다. 두 사람은 함께 지낼 정도로 절친하나 어딘가 계속해서 삐걱댄다. 두 사람의 위치가 주는 불안정함이었다. 여자 다이빙 세계 랭킹 1위의 이영이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할 때, 수진은 은퇴를 권유받는다. 이영은 그런 수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의 안정까지 포기하며 싱크로를 제안한다. 멈칫하던 수진은 "지질해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용기를 내 다이빙대에 오르고, 이영과 빼어난 호흡을 자랑한다.
하지만 수진이 극찬을 받던 날, 두 사람은 빗길에 사고를 당한다. 이영은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났지만 수진은 실종된다. 이후부터 이영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환청과 환영에 몸부림친다. 따 놓은 당상이었던 국가대표 자리마저 아슬아슬해지고 '진실'과 상관없이 이영은 망가져간다.
영화 '가려진 시간'의 각본을 맡고 '택시운전사'를 각색했던 조슬예 감독은 두 명의 여성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워 아슬아슬한 심리극을 펼쳐냈다. 친구라서 가질 수 있는 미묘한 감정, 특히나 등수를 두고 앞다투는 라이벌의 위치에 있다면 지닐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세심하게 모았다. 작은 불씨와도 같았던 이영과 수진의 감정이 활활 타오르다가 결국엔 터져버리는 지점까지 침착하게 내달린다.
장치로는 다이빙을 활용했다. 고도에서 떨어지는 수중 스포츠인 다이빙은 여러모로 스릴러 장르와 어울린다. 낙하가 주는 아찔함은 인물의 곤두박질과 몰락을 은유하는 듯해 숨을 옥죄고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물속은 갈피를 잃게 만든다. 조 감독이 미장센에 공을 들인 게 여실히 느껴진다. 자칫 반복처럼 느껴질 수 있는 수중 촬영은 다양한 구도로 담아내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고, 각종 소리를 예리하게 포착해 실체 없는 공포를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선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구미가 당기는 소재로 윤곽만 잡았다. 이야기 풀이는 플래시백, 화면 전환 등에 주로 의존했다. 이러한 빈틈은 배우들이 제대로 메웠다.
수영복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맨얼굴을 한 신민아는 그야말로 파격 변신이다. 선의의 미소, 의심, 불안감, 야망, 절규, 죄책감, 오열 등 날뛰는 이영의 감정 표현에서도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다. 욕망과 광기에 짓눌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짜릿한 경험이다. 이유영은 많지 않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한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특유의 오묘한 눈빛과 나른한 목소리는 수진의 미스터리함에 제격이다.
무엇보다 여성 배우, 여성 감독, 여성 제작진이 주는 신뢰가 대단하다. 단순히 특정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수영복차림은 단 한번도 관음적으로 담기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간 수많은 연출자들이 오류를 범해왔기 때문에 조 감독의 섬세한 배려가 빛난다. 러닝타임은 84분. 오는 23일 개봉.
[사진 =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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