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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KB를 이기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수 차례 반복한 말이다. 10일 KB와의 사실상의 1위 결정전서 이긴 뒤에도 ''운, 행운, 럭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박혜진은 "감독님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냉정하게 봐야 한다. 두 사람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느 팀이든 40분 내내 균일한 경기력을 내긴 어렵다. 우리은행도 공수의 미스가 분명 있었다. 예를 들어 박지수에게 수비자 세 명이 몰린 것을 두고 박혜진은 "트리플 팀을 준비하지 않았다. 로테이션의 미스였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KB는 추격의 흐름에서 외곽 오픈슛 찬스를 수 차례 날렸다. 박지수도 18점 18리바운드를 기록했으나 2점슛을 18개 던져 6개만 넣었다. 물론 박지현, 오승인의 마크가 터프했지만, 박지수가 손쉬운 슛을 놓친 장면도 많았다.
또 하나. KB가 상대적으로 전력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멤버구성상 KB는 우리은행에 미세하게 앞선다. 그러나 지난 시즌과 올 시즌 모두 우리은행의 4승2패 우위. 이 부분은 KB의 시즌 및 경기 준비, 시스템 등을 전반적으로 짚어봐야 한다. KB가 100%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우리은행이 KB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당연히 KB는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절반은 거짓이다. 10일 경기만 봐도 우리은행이 승부처에 KB를 압살한 부분, 더 넓은 측면에서 시즌 내내 부상자가 속출했음에도 KB에 밀리지 않은 건 우리은행의 저력이 분명히 있다고 봐야 한다. 행운만으로 2년 연속 KB를 누르고 정규경기 우승을 눈 앞에 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은행은 공수활동량과 트랜지션에서 시즌 내내 KB를 압도했다. KB의 경우 10일 경기서 활동량을 많이 올렸다. 그러나 디테일이 떨어졌다. 우리은행이 4쿼터 중반 박혜진과 최은실의 무더기 3점포로 승기를 잡은 대목을 살펴봐야 한다. 박혜진과 최은실이 김소담의 느린 발을 활용, 픽&팝으로 찬스를 만든 것을 제외하면 KB의 로테이션 미스가 많았다. 박혜진이 6분59초전 좌중간에서 터트린 결정적 3점포가 KB의 스위치디펜스 이후 로테이션이 되지 않은 대표적 장면이었다. 염윤아나 심성영이 제때 커버하지 못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박지수에 대한 더블팀과 로테이션에서 코트밸런스가 무너진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박혜진의 3점슛이 들어간 것 자체를 행운이라고 해도,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찌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건 분명했다. 우리은행은 예년보다 훈련량을 많이 줄였다. 올 시즌 부상자가 많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박혜진도 "경기를 앞둔 날에는 훈련량을 줄이고 컨디션 관리에 집중했다"라고 했다.
대신 그만큼 디테일한 준비가 수반됐다. KB의 스위치디펜스 이후 로테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것에 대비, 코트를 넓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준비를 해왔던 게 틀림없다. 공수에서 코트밸런스를 유지하는 건 농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무서운 이유는 그 어떤 팀보다 공수의 기본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우리은행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도 기본을 지키는 습관이 있다"라는 관계자들의 말도 있다.
박지수 수비도 마찬가지다. 박지현이 3쿼터 중반 5반칙으로 물러났지만, 박지수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슛 적중률을 떨어뜨린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김정은이든 김소니아든 박지현이든 우리은행은 박지수 수비를 가장 잘 하는 팀이다. 자세를 낮추고, 박지수의 조그마한 습관을 역이용, 디테일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오승인의 경우 위 감독이 "사실 눈꼽만큼도 쓸 생각이 없었다"라고 했지만, "팔이 길어서 블록 타이밍을 잘 잡는다"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파워와 경험이 부족하지만, 5분 정도 버틸 수 있는 카드로 염두에 두고 준비시킨 게 틀림 없다. 오승인의 3~4쿼터 박지수 수비를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올 시즌 우리은행은 악재가 너무 많았다. 개막전부터 박혜진이 쓰러졌다. 최은실은 준비 자체가 부실했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김정은이 시즌 아웃되는 대형 악재도 있었다. 객관적 경기력은 당연히 통합 6연패 시절과 비교할 수 없다. 어느 팀을 만나도 시원스럽게 풀리는 경기가 거의 없다. 박지현과 김소니아는 기복이 심한 약점이 있다.
하지만, 자체적인 경쟁력을 극대화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놓치지 않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일방적으로 밀릴 수 있는 경기서 접전을 펼치고, 이길 수 있는 경기는 더 확실하게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준비를 많이 못 했다고 해도, 위 감독과 전주원 코치는 WKBL에서만 10년 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6개 구단 선수 개개인의 디테일한 특성을 잘 안다.
김소니아는 "감독님과 전 코치님이 훈련할 때 디테일한 부분을 잘 잡아준다. 혹시 놓치는 부분은 임영희 코치님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준다"라고 했다. 위 감독과 전 코치의 위기관리능력, 임 코치의 성장 등 벤치워크만 봐도 우리은행의 2년 연속 정규경기 우승이 눈 앞에 온 걸 운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런 위 감독이 유일하게 걸리는 게 있다. "정은이가 다치고 나서 내가 너무 무리했다"다. 수년간의 피로 누적으로 개개인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김정은마저 쓰러져서 어려운 상황인데 KB가 쭉쭉 도망가지 못하니 1위 욕심을 내다 일부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했다는 자책이다.
위 감독이 KBL 몇몇 감독처럼 폭 넓은 로테이션을 선호하는 지도자는 아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KB를 제치고 정규경기 1위를 '할 수 없다'고 봤지만, 결국 KB의 부진을 틈타 디테일의 차이를 보여줬다.
그래서 위 감독의 "운이 따라서 이겼다"라는 말은 반만 믿으면 된다. 우리은행은 정규경기 1위의 자격이 충분하다. 당연히 통합우승에 도전할 자격도 있다.
[우리은행-KB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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