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몇 주 전 기타선생님께 들은 희소식이 하나 있다. “전 언제쯤 기타를 잘 치게 될까요?” “한 쉰여섯 살쯤이요.” 분명 선생님은 막 던진 말일 테지만,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나란 사람에겐 이것만으로 큰 힘이 됐다.
여기서 일단 북에디터 종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책 <야구장 습격사건>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고, 할머니는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강 상류에서 커다란 복숭아가 떠내려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복숭아를 두 손으로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깐, 오쿠다 씨. 빨래는 어떻게 됐습니까, 빨래는?” 그게 바로 편집자라는 생물이다.’
일본 동화 <모모다로 이야기>다. 여기서 오쿠다 히데오는 ‘편집자가 스토리의 정합성에 대해 물어보면, 왜 그런 데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늘 부루퉁해지고 만다’고 했다.
이처럼 북에디터는 육하원칙과 인과관계, 사실 확인 등등을 따지고 드는 사람. 불확실성, 부정확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까 평소 같으면 기타선생님에게 왜 쉰여섯인지 그 근거를 묻고 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나는 또한 소심하다. 막상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꽤나 구체적으로 충격받을 것 같아 애써 묻어둘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나는 선악과에 손을 대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들의 후예다. 좀처럼 늘지 않는 내 실력의 수준을 알고 싶었다.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기타선생님에게 묻는 대신 연습 실황을 녹음한 파일을 칭찬에 매우 후한, 한때 록커가 꿈이었던 작가에게 보냈다. 대놓고 “칭찬해달라”는 말과 함께.
“칭찬해달라는 거지? 솔직하게 말하지 말고. 음……. ……. 고생했어! 즐겁게 하고 있다면 된 거야!”
아…! ‘칭찬 요정’도 도저히 칭찬할 수 없는 내 현실에 절망했다. 그간 기타선생님의 인색한 칭찬은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나는 어디 대회에 나갈 목적으로 기타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내 실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평가를 받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학교 다닐 때는 숫자, 점수로 평가되고 평가하는 일이 싫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인사철마다 돌아오는 평가 숫자가 싫긴 매한가지였다. 직업 특성상 내가 편집한 책의 분야 순위, 세일즈 포인트 같은 숫자, 수치 등도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반면에 나는 안다. 점수나 순위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 100점을 향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서 얼마씩 점수를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 기타 실력이 100점 만점에 몇 점인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이유다.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인스타그램 dodoseoga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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