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링컨은 말했다.
인간은 40여 개 얼굴근육이 있어 표정을 만든다. 기쁨 슬픔 짜증 분노 등의 감정은 표정으로 쉽게 드러난다. 평소 어떤 감정을 주로 느끼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40년이라는 시간 정도면 얼굴에 충분히 각인될 법하다.
얼마 전 한 인물의 얼굴을 유심히 볼 일이 있었다. 그것도 장장 100분가량이나. 다큐멘터리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통해서다.
세계적 뮤지션이자 영화음악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는 <마지막 황제>, <폭풍의 언덕>, <레버넌트: 죽음으로 돌아온 자> 등으로 유명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그가 음악으로 남긴 자서전이다.
영화는 피아노 앞에 앉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검은색 피아노와 검은 정장을 입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직 백색의 조명만 있는 여백이 많은 공간에서 그의 연주가 시작되면 세상은 흑과 백을 아우르는 선율로 가득 찬다.
20곡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동안 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표정에 눈이 갔다. 그는 마치 피아노와 한 몸이 된 것 같았는데, 그 표정 역시 선율을 따라 움직였다.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의 표정을 보는 게 처음도 아니건만 그 표정에는 단순히 음악과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라고 할까.
분명 육신의 고통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을 테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연주할 때 류이치 사카모토는 매우 편안한 표정이었다. 힘겨운 숨결 소리마저 잊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분노와 절망, 혹은 탐욕에 사로잡힌 얼굴들을 꽤 봤다. 그럴 때면 나는 그것이 저 사람의 본성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표정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런 얼굴로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이 적어도 악인일 리는 없다고.
문득 기타를 연습할 때 내 표정이 궁금했다. 혼자 영상이라도 찍어볼까 생각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분명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잔뜩 짜증이 나 찌푸린 표정일 테다. 멍하니 반쯤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저녁 연습 때도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는 F코드 때문에 짜증이 나다가 우울해하기도 했다.
괜찮다. 마흔은 넘었지만, 기타를 잡기 시작한 걸로 치면 이제 막 1년을 넘겼을 뿐이니. 아직 기타를 칠 때만큼은 내 얼굴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훗날 할머니가 될 때까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내 표정은 또 바뀔 테다. 적어도 기타를 잡을 때만큼은 편안한 얼굴이면 좋겠다.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들지라도 좋은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