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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사령탑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현지 언론에서도 칭찬이 쏟아졌다. 물론 아직 증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첫 단추를 잘 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고우석은 1일(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의 호호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원정 맞대결에서 1이닝 동안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에 불과하지만 고우석은 첫 등판에서 홀드를 수확했고,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우석은 이번 겨울 우여곡절 속에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었다. 고우석은 2023시즌 내내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뜻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KBO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고우석에 대한 '신분조회' 요청을 받았다. 신분조회는 빅리그 구단이 특정 선수에게 관심이 있을 때 하는 형식적인 절차다.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메이저리그 입성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우석에게 관심이 있는 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고우석은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기로 결정, '친정' LG 트윈스에 빅리그 진출 의사를 드러냈다. 고우석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7년차까지 '등록일수'를 모두 채웠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빅리그 진출을 모색할 수 있었다. 이에 LG는 고우석의 뜻을 존중하기로 결정, 메이저리그 진출의 초읽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포스팅이 됐을 때를 제외하면 고우석은 미국 현지 언론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했고, 포스팅 데드라인을 앞두고도 좀처럼 계약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고우석의 포스팅은 불발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뉴욕 포스트'의 존 헤이먼이 고우석과 샌디에이고의 계약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빅리그 진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고우석은 메디컬 체크를 위해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샌디에이고는 2년 보장 450만 달러(약 60억원), 2026년은 300만 달러(약 40억원)의 뮤추얼(상호동의) 옵션이 포함된 2+1년 계약을 제안했다. 당초 LG와 약속했던 계약 규모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지만, 고우석의 도전에 힘을 싣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고우석의 빅리그행이 결정됐다.
그리고 1일 시범경기에서 고우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된 샌디에이고 선수들 중 가장 늦게 마운드에 올랐는데, 그만큼 확실히 준비 과정을 밟은 뒤 마운드에 오른 모습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경쟁력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고우석은 5-3으로 샌디에이고가 근소하게 앞선 8회초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 타일러 소더스트롬과 맞대결을 가졌다. 그리고 베이스볼아메리카(BA)의 유망주 랭킹 73위에 올라 있는 소더스트롬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고우석은 초구에 92마일(약 148km) 포심 패스트볼을 뿌려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그리고 2구째에는 88마일(약 141.6km)의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0B-2S의 유리한 고지을 점했고, 위닝샷으로는 80마일(약 128.7km)의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그리고 빅리그 재입성을 노리고 있는 박효준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쌓았다. 이후 고우석은 쿠퍼 보우맨에게 안타를 허용했으나, 이어나온 맥스 슈만도 변화구로 삼진 처리하며 탄탄한 투구를 뽐냈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에 따르면 고우석은 마운드를 내려온 뒤 동료들과 성공적인 데뷔전에 대한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경기가 종료된 후 마이크 쉴트 감독은 "고우석이 훌륭한 투구를 펼쳤다"며 "고우석의 바디 랭귀지와 적극성이 좋았다. 모든 것이 적중했고, 공의 스핀이 좋았다. 모든 공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엄청난 첫 등판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2023시즌이 종료된 후 '특급마무리' 조쉬 헤이더가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통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샌디에이고는 확실한 마무리 카드를 잃었다. 이에 샌디에이고는 고우석을 비롯해 일본프로야구 최연소 200세이브의 금자탑을 쌓은 마쓰이 유키, 메이저리그 통산 8시즌 동안 19승 18패 61홀드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 중이던 완디 페랄타를 품에 안으며, 불펜 재건에 나섰다.
그런데 시범경기가 시작되기 전 마이크 쉴트 감독은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과 인터뷰에서 마무리 투수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고우석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마무리로 뛸 가능성이 낮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단 1경기 만에 적지 않은 임팩트를 남긴 만큼, 현지 언론에서는 고우석이 마무리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충분하며, 세이브 기회까지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마쓰이, 로버트 수아레즈, 페랄타와 경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소더스트롬은 2023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고우석이 8회에 등판한다는 것은 마이너리거들을 상대로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확인해야 할 것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샌디에이고 또한 고우석에게서 꽤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면서도 "헤이더가 FA로 떠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불펜이 성공하는 것은 고우석과 마쓰이가 불펜의 뒤쪽에 어떻게 들어가느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강한 공을 던지는 로버트 수아레즈가 시즌 초반에 세이브 기회를 가장 많이 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쓰이는 일본에서 10시즌 동안 236세이브, 고우석은 KBO리그에서 7시즌 동안 139세이브를 기록했다. 쉴트 감독은 고우석과 마쓰이 모두에게 세이브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후반 샌디에이고에게는 많은 유연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마이너리거들이 아닌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증명할 것이 남았지만, 충분히 뒷문 경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스포츠 호치' 또한 고우석이 첫 등판을 마친 뒤 "LG 트윈스에서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한국을 대표하는 구원 투수 고우석이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으로 호투했다"며 "수호신(마무리)였던 헤이더가 이적하면서, 새로운 마무리 자리를 놓고 마쓰이와 수아레즈, 고우석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마쓰이가 부상으로 투구를 중단한 것은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분명 고우석에게는 기회다. 첫 단추를 잘 꿴 만큼 좋은 흐름을 이어갈 필요성이 있다. 일단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고우석은 샌디에이고 캠프 내 투수들 중 가장 늦게 경기에 투입됐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극찬했다.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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