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여행작가 신양란]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자유여행에 비한다면 패키지여행은 가이드를 믿고 따라다니면 되니 속 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패키지여행일지라도 조금은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나처럼 안 해도 되는 고생을 사서 할 수 있다.
패키지여행 팀에 끼어 발칸 반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사전에 공지된 여행 일정을 훑어보며 둘째 날은 '네움'이란 곳에서 잔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곳이 크로아티아 땅인 줄만 알았다. 둘째 날 여행하는 자그레브와 플리트비체가 크로아티아 땅이고, 셋째 날 여행할 두브로브니크가 또한 크로아티아 땅이니, 그 사이에 낀 숙박지는 당연히 크로아티아 땅일 것이라고 여겼다.
자그레브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이드의 소매치기가 득시글거린다는 설명부터 들었고, 다음 날 여행하게 될 자그레브 구시가지도 소매치기가 들끓는다는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자그레브 대성당 주변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주의하라는 문자가 외교부로부터 오기까지 했으니 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셋째 날 아침에 짐을 챙기면서 여권을 큰 가방에다 넣었다. 어차피 그날은 크로아티아 안에서만 돌아다니니 여권이 필요치 않을 줄 알았다. 까짓것, 돈이야 털리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권을 분실하면 공연히 다른 일행에게까지 민폐가 될 게 뻔했다. 가이드가 여권 재발급 문제로 신경을 쓰다 보면 원만한 진행이 어려울 것 아닌가.
그래서 ‘제아무리 소매치기의 솜씨가 귀신같다고 해도 설마 버스 트렁크에 넣어둔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가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큰 가방 안에다 여권을 꽁꽁 숨겼다.
그런데 그날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천만뜻밖의 말을 꺼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있는 네움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땅이라고. 그러므로 국경을 한 번 지나가게 될 텐데, 여권 검사를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이런 낭패가 있나. 물론 가이드는 아침에 호텔을 출발할 때 “여권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가방을 트렁크에 실은 뒤였기 때문에 ‘오늘은 여권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 괜찮겠지’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국경을 통과한다니, 여권 검사를 할지도 모른다니…. 이런 곤혹스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때부터 내 마음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받게 된다면 나는 운전기사에게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하고, 그 어두운 밤에 국경에서 가방을 뒤적거려 여권을 꺼내야만 한다. 그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혹시라도 여권 검사하는 이의 성격이 괴팍하다면 어떻게 하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관계는 어떤지, 출입국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사이는 아닌지 등등, 오만 가지 걱정으로 국경을 통과하기 직전까지 전전긍긍했다.
천만다행히도 버스는 국경 검문소에 잠시 멈췄다가 그냥 통과했다. 내내 노심초사했던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란 생소한 나라에 첫발을 내딛었다.
여행 출발 전에 미리 네움이란 도시에 대해 잠깐만 검색해 보았다면, 그곳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땅이라는 걸 알았을 테다. 그랬다면 아무리 자그레브 소매치기가 무서워도 여권을 큰 가방에 넣어 트렁크에 싣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겠다. 그런데 막연히 크로아티아 땅이려니 생각한 나머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마음고생을 하게 됐다.
여행 준비는 가방 챙기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 여행에서 들르게 될 곳에 대한 기본 정보 정도는 알아보는 성의가 필요함을 그때의 고생으로 나는 새삼 절감했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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