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2024년 5월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렸다. LG 김유영이 7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은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마이데일리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저를 응원한다는 생각으로 던졌어요"
LG 트윈스 김유영은 2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팀 간 시즌 10차전 원정 맞대결에 구원 등판해 1이닝 동안 투구수 9구, 무실점 '퍼펙트' 투구를 선보였다.
지난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2022-2023년 겨울 유강남의 보상선수로 LG로 이적하게 된 김유영. 이적 첫 시즌에는 단 한 번도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서 '친정' 사직구장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LG의 핵심 불펜으로 거듭나면서 롯데를 상대로 자주 마운에 오르는 중이나, 이날 경기 전까지 롯데를 상대로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김유영은 지난 4월 18일 '친정' 롯데를 상대로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아내지 못하고 1피안타 4실점(1자책)으로 부진했다. 그리고 5월 11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도 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실점(1자책)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고, 이튿날도 1이닝 2피안타 1실점(1자책), 6월 15일 롯데전에서 1이닝 3피안타 1실점(1자책), 16일 ⅔이닝 1볼넷 1실점(1자책)으로 5번의 등판에서 줄곧 고개만 숙였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김유영이 마운드에 오른 7회, 어쩌면 이날 경기의 가장 큰 승부처였다. 1-0으로 근소하게 앞선 7회말 LG는 어떻게든 승기를 굳히기 위해 선발 디트릭 엔스에 이어 백승현을 투입했다. 전날(22일) 김진성이 자신의 SNS를 통해 구단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팀 분위기를 무너뜨리고 2군으로 내려간 상황에서 백승현이 마운드를 넘겨받은 것. 그런데 등판과 동시에 나승엽에게 볼넷을 내주더니, 고승민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무사 1, 3루 위기가 찾아왔다.
2024년 4월 21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의 더블헤더 2차전 경기가 열렸다. LG 김유영이 5회말 구원등판해 역투하고 있다./마이데일리
2024년 6월 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2024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LG-두산의 경기. LG 김유영이 8회말 무사 1,2루에서 구원 등판해 역투를 펼치고 있다./마이데일리
LG는 큰 고민 없이 백승현을 대신해 김유영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고, 이 선택은 제대로 적중했다. 김유영은 첫 타자 대타 이정훈을 상대로 2B-0S의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3구째 140km 직구를 던져 중견수 방면에 뜬공을 유도했다. 롯데의 3루 주자는 황성빈. 그런데 이 타구가 깊지 않은 얕은 뜬공으로 이어지면서, 충분히 홈 승부를 펼쳐볼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손쉽게 아웃카운트 한 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1사 1, 3루. 여기서 김유영의 투구가 빛났다. 김유영을 후속타자 박승욱을 상대로 3B-2S의 풀카운트에서 6구째 143km 직구를 몸쪽 코스에 찔러 넣었고, 이는 대성공이었다. 박승욱의 방망이에 빗맞은 타구가 투수 땅볼로 연결된 것. 김유영은 침착하게 2루수를 향해 공을 뿌려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생산했고, 2루수 신민재 또한 1루에 정확하게 공을 전달하면서 병살타로 이닝을 매듭짓게 됐다.
물론 김유영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LG는 8회말 동점을 허용했으나, 9회초 공격에서 다시 한 점을 뽑아낸 결과 2-1로 롯데를 꺾으며, 올 시즌 최다 6연승을 질주하게 됐다. 염경엽 감독 또한 경기가 끝난 뒤 "김유영이 터프한 상황에서 잘 막아주며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우리 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절체절명의 위기, 특히 상대 전적도 좋지 않은 친정을 상대로 마운드에 오른 순간의 감정은 어땠을까. 경기가 끝난 뒤 만난 김유영은 "불펜 투수라면 항상 이런 상황을 머리에 그리고 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연습을 한다. 특히 저연차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을 할 순 있지만, 조금 더 천천히 하려고 했고, 침착하게 던지려고 했던 것이 내 피칭으로 이어졌다"고 활짝 웃었다.
2024년 5월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렸다. LG 김유영이 8회초 무실점으로 막은 뒤 기뻐하고 있다./마이데일리
사실 김유영은 1, 3루에서 동점까지는 각오를 했었다고. 그는 "코치님께서 투수를 교체할 때도 '3루 주자는 신경을 쓰지 말아라. 한 점을 준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던져라'고 하셨다. 나도 한 점을 준다고 생각하고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다"며 "사실 첫 타자의 공이 떠올랐을 때 홈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3루 주자가 황성빈이었기 때문에 승부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멈추더라. 그리고 (박승욱을 상대로는) 외야에 깊은 타구를 맞지 않으려고 바깥쪽 승부를 고집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수도 없이 밟았던 사직구장의 마운드지만, LG의 유니폼을 입고 등판하는 것은 여전히 낯설었다고. 김유영은 "첫 원정을 왔을 때는 조금 감정이 이상하더라. 그래서 경기를 하는 내내 마음이 이상해서 집중이 잘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몇 번 원정을 오니, 조금 침착할 수 있었다. 다른 팀과 같은 상대 팀이라고 생각하고 던졌다"며 "오늘도 불펜에서 1루 관중석을 보고 있으니 '역시 사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경기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나를 응원한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미소를 지었다.
줄곧 롯데를 상대로 부진했던 김유영은 이날로써 완전히 부담을 털어냈다. 그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야구 선수들은 매일 새로운 날을 맞기 때문에 그전에 좋았던, 안 좋았던 오늘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만의 루틴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며 "올 시즌 목표는 아프지 않고 풀타임을 치르는 것이었는데, 이미 한 번 아팠다. 이제는 남은 경기에서 아프지 않고 계속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두 주먹을 힘껏 쥐었다.
부산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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