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2014년 여름 여행의 주된 목적은 <가고 싶다, 피렌체>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거였다. 그래서 로마로 들어가 피렌체를 여행한 다음 밀라노에서 나오게 되었다.
로마로 들어가기 전에 핀에어 스톱오버를 이용해 헬싱키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한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오늘은 여행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밀라노 공항에서 겪은 황당한 일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밀라노 공항 핀에어 체크인 카운터를 찾아가 전자티켓을 내밀자 직원은 “헬싱키 공항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니 루프트한자(독일 항공)를 이용하여 뮌헨 공항을 거쳐 서울로 가도 괜찮겠는가?”라고 물었다. 모로 가도 한국만 가면 된다고 생각한 나는 별생각 없이 “그래도 된다”고 대답했다.
직원 설명을 들은 뒤, 우리 부부는 그가 알려준 루프트한자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나는 이미 두 항공사끼리 이야기가 다 되어, 우리가 티켓을 보여주면 뮌헨 경유 서울행 탑승권을 내어줄 줄 알았다.
그런데 루프트한자 직원은 우리 티켓을 보더니 “이것은 핀에어 티켓이다. 우리는 루프트한자인데, 왜 우리한테 왔느냐?”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누가 그것을 모르나. 핀에어에서 이리로 가라고 해서 온 거 아니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안 되어 큰소리는 못 치고 더듬더듬 사정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루프트한자 직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는 모르는 일이니 핀에어에 가서 물어봐라.” 하였다.
핀에어 티켓을 들고 루프트한자 카운터에서 난동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핀에어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짐을 부치지 못한 상태라 큰 가방을 끌고 다니려니 힘이 들었지만, 정말 힘든 건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생긴 문제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핀에어 카운터에서 “루프트한자 직원이 모른다고 하더라”라고 하니, 괘씸한 핀에어 직원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그러면 루프트한자 사무실(office)에 가서 이야기 하라”는 거다. 아까는 분명히 루프트한자 카운터(counter)로 가라고 한 것 같은데, 직원이 워낙 뻔뻔하게 나와 애초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화도 못 냈다.
밀라노 공항이 큰 편이 아니라서 루프트한자 사무실은 금세 찾았다. 문제는 우리가 내미는 티켓을 본 직원이 카운터 직원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핀에어 티켓이고, 우리는 루프트한자다. 왜 우리한테 왔느냐?”
나는 영어로 떠듬떠듬 “핀에어 직원이 말하기를 헬싱키 공항에 문제가 생겼으니 뮌헨을 경유하는 루프트한자를 타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루프트한자 직원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기들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점은 분명히 안 것 같았다.
그는 매우 사무적인 말투로 “나는 도와줄 수 없으니 ‘세아 오피스’로 가 봐라”라고 했다. 이때부터 나는 분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멀쩡한 티켓을 가지고 이렇게 뺑뺑이 돌림을 당하다니, 무슨 이런 억울한 경우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세아 오피스로 가라고 일러주는 루프트한자 직원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티켓은 핀에어 것이니까. 할 수 없이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며 세아 오피스를 찾아 밀라노 공항을 헤맸고, 드디어 찾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곳으로 갔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세아 오피스 직원이 핀에어 티켓을 내미는 나에게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헬싱키 공항이 어떻고, 루프트한자가 어떻고, 뮌헨 경유 서울행 비행기가 어떻고 하는 설명을 세 번째로 해야만 했다.
어설픈 내 설명을 다 듣고 난 세아 오피스 직원은 “서울행 새 항공권을 구입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새 티켓을 사면 내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핀에어 티켓을 루프트한자 티켓으로 교환(changing ticket)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뭐라고 뭐라고 말하며 공항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그리로 가라는 뜻인 듯했다.
어쨌든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루프트한자 탑승권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그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갔더니 거기에 핀에어 사무실이 있고, 한국인 여행자가 몇 사람이 보였다. 애초에 그리로 갔어야 하는데, 불친절한 핀에어 직원의 잘못된 설명 때문에 돌고 돌아 겨우 그곳을 찾은 것이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 역시 우리 부부처럼 공항을 뺑뺑 돌다가 그리로 왔다면서 몹시 분기탱천해 있었다. 어쨌거나 그곳에서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뮌헨행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영어 벙어리 신세라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온 것이 그렇게 분할 수 없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귀국이었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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