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이 엄마가 쓴 글을 보았다.
시댁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시아버지가 두 돌이 안 된 아이에게 스팸을 먹였다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말렸지만 시아버지는 아이가 스팸을 맛있게 먹는다며 계속 먹였다고 했다. 댓글에는 속상해하는 글쓴이 마음에 공감 한다는 이들이 다수였다.
소아과에서는 두 돌까지는 건강을 위해 무염식을 권한다. 아직은 아이에게 염분이 높은 가공육을 먹이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도 이해됐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스팸을 맛있게 먹는다’는 말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주 좋은 정보를 얻은 듯 반가운 마음으로 ‘오호라, 스팸을 먹여 보자’ 하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밥을 잘 먹지 않는데, 특히 고기를 싫어한다. 생선과 달걀도 좋아하지 않아서 나는 늘 어떻게 단백질을 보충할지 고민한다. 아이가 발달 지연인 것 못지않게 걱정되고 힘든 점이다.
스팸을 들이밀자 아이가 고개를 휙 돌렸다. 놀이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슬쩍 먹이니 퉤퉤 뱉어냈다. 생고기, 양념 고기, 훈제 고기에 이어 가공육도 입에 안 맞는 모양이다.
왜 고기를 안 좋아할까? 우리 부부는 모두 고기를 좋아하는데...... 아이가 이해되지 않을 땐 ‘누굴 닮았을까? 왜 우리 부부와 다를까?’라는 생각부터 든다. 아이가 꼭 부모만 닮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내가 엄마와는 아주 다른 식성을 지녔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그다음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되짚는다. 이유식을 잘해야 아이 미각이 발달하고 편식을 안 한다던데, 나는 이유식 먹이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미각 발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음식을 더 다양하게 해주지 못하고, 밥과 반찬으로 구분해 먹는 연습을 게을리한 결과가 지금 밀려오는 것만 같다.
속상한 마음이 자신을 향한 원망으로 향할 때, 엄마들의 ‘잘 안 되는 육아’ 수다가 도움이 된다.
이유식 때 골고루 먹이려고 정성을 다했지만 부질없다는 한탄. 다양한 맛에 노출되면 편식 안 하는 아이로 자란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핀잔.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자조. 누가 누가 더 편식이 심한가 이야기하다 보면, 영유아기 시절 편식 문제도 다 하나의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육아서는 식성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나만 돌아보아도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어렸을 때 버섯과 가지의 물컹한 식감이 싫고 미역 줄기의 비린 향이 싫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좋아한다. 예전과 달리 단 음료수를 싫어하고 30대부터는 모든 음식을 꽤 싱겁게 먹는 식성으로 변했다.
왠지 기력이 달리는 날에 우리 부부는 “오늘은 고기 좀 먹어야겠다” 외치며 삼겹살을 굽는다.
아이는 우리가 뭘 먹든 일말의 관심도 없다. 아이에게 이 고기가 버섯, 가지, 미역 줄기 같은 것이길......
아이를 위해 남편은 단백질 음료를 사 오고 나는 철분제를 먹인다. 이런 게 없던 시절에는 고기 싫어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까. 아니. 고기를 충분히 먹일 수도 없었겠지.
고기가 없어서 못 먹는 게 속상한 일이지, 고기가 있는데 안 먹는 게 속상할 일이냐고 말하는 남편은 참 현명한 사람이다.
아이가 삼겹살을 슬쩍 보았다가 잠깐 사이 저만치 뛰어간다.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아이 종아리가 여름을 나며 갈색빛이 되었다. 고기는 잘 안 먹지만 어느새 단단하고 굵은 근육도 자리 잡았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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