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마이데일리 = 부산 강다윤 기자] 장르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올해의 아시아인영화 수상과 두 편의 신작이 함께다.
3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갈라 프레젠테이션 '클라우드', '뱀의 길' 기자회견이 열렸다. 행사에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박도신 집행위원장 대행이 참석했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매해 아시아영화산업과 문화발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수상자는 '큐어'(1997), '회로'(2001), '밝은 미래'(2002), '스파이의 아내'(2020) 등 수많은 영화로 열혈 팬을 만들어낸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대학시절부터 8mm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첫 상업영화인 '간다천 음란전쟁'(1983)으로 데뷔했다. '큐어'(1997), '회로'(2001), '로프트'(2005), '절규'(2006),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 등을 통해 호러 장르의 대가로 입지를 굳힌 그는 로맨스 영화와 SF 영화를 제작하며 장르적으로 국한되지 않은 감독임을 증명했다.
이날 구로사와 감독은 "부산에는 여러 번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특별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의 아시아인영화상이라는 굉장히 명예로운 상을 받게 됐다"며 "어제 정말 화려하고 훌륭한 오프닝 세리머니에 참가했다. 아마 태어나서 그렇게 굉장히 화려하고 훌륭한 자리에서 선 게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긴 레드카펫도 처음이라 어제는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끝나고 밤에 파티를 했는데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왔다.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도 굉장히 많이 와줬다. 프랑스, 캐나다, 홍콩 등과 물론 일본에서 굉장히 지인들이 많이 왔다"며 "그 장면을 보면서 여기가 세계영화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에 세계영화가 다 몰려있으니 굉장히 훌륭한 자리라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구로사와 감독은 올해 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을 통해 '뱀의 길(2024)'과 '클라우드' 두 편의 신작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구로사와 감독은 "이번에 신작 두 편이 부국제를 통해 상영되는데 이것도 평생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것도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중 '뱀의 길'은 1998년 구로사와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각색,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프리랜서 기자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딸의 복수에 나서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렸다. 구로사와 감독은 "셀프 리메이크로 프랑스에서 작업한 독특한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촬영한 게 내 의사는 아니었다. 5년 전 프랑스 프로덕션에서 다시 찍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뱀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셀프 리메이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뱀의 길'을 쓰신 각본가가 '링'을 쓴 타카하시 히로시다. 너무 잘 쓰셨지만 개성이 강한 분이라 내 작품보다는 타카하시 히로시 작가의 성향이 많이 들어갔다. 내 작품이번에 내 작품으로 바꿔봐야겠다는 욕망이 발동한 것 같다"고 셀프 리메이크 이유를 전했다.
원작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2004년에 제작했던 '뱀의 길'은 한마디로 복수극이다. 주인공이 남자고 거의 모든 캐릭터가 남자다. 2024년 '뱀의 길'은 자신의 딸을 누군가 죽였고, 거기에 대한 복수라는 굉장히 심플한 구조다. 아버지가 딸의 복수를 하는데 뭔가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첫 '뱀의 길'에서는 아내가 나오지 않는다. 리메이크판에서는 아빠가 복수를 하면 아내가 있을 것이고, 부부의 이야기니까 주인공을 여자로 바꿨다. 또 다른 피해자인 아빠가 나오는데 각각 아내, 남편이 있지 않나. 이게 굉장한 차이를 준다. 이 부분을 바꿔서 꼭 그려보고 싶었다"고 짚었다.
또 다른 신작 '클라우드'는 온갖 물건을 헐값에 사들여 비싸게 파는 요시이(스다 마사키)가 폭력의 대상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구로사와 감독은 "지난해 12월에 찍은 작품이다. 본격적인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일본 액션은 영화는 현실과 괴리감이 큰, 야쿠자처럼 평소 폭력과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라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조금 다른, 일상에서 폭력과 인연이 없는 일반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극한의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스다 마사키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너무너무 바쁜 배우 중 하나다. 정말 이상적으로 '나는 이 사람이었으면 가장 좋겠는데' 생각은 했지만 너무 바쁘니까 내 작품은 안 받아주겠지 싶었다. 그런데 스다 마사키 배우가 30대가 됐고 결혼도 하면서 그동안과 다른 타입의 작품을 한 번 하고 있었던 시기 같다. 배우로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에 이 작품 이야기를 해서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굉장히 러키 한 행운"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장르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만큼 구로사와 감독은 이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는 "작품성이 우수한 일본의 젊은 감독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처럼 장르 영화를 목표로 하는 감독은 아마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그런 감독들이 많다고 들어서 굉장히 부러울 따름"이라며 "사실 일본에서 장르영화로 젊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좀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곤란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일본 장르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장르영화의 매력은 한 단어로 표현하기 굉장히 어렵다. 영화적인 무언가, 영화만으로 표현이 가능한 순간들을 그릴 수 있는 게 장르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만으로만 표현 가능한 순간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스크린에서 눈을 다른데 두지 못하고, 못 박힌 듯 쳐다봐야 되는 영화, 영화가 끝났을 때 '나 다시 보고 싶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익사이팅하다. 그런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장르영화가 아닐까 싶다"라고 짚었다.
한편 올해 29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흘간 개최된다.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54편을 포함해 총 63개국으로부터 온 278편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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