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여행자로서 가장 섭섭한 장소는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곳이다.
감상하고 이해하면 그만이지, 굳이 사진을 남길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본 것을 금세 까먹다 보니 사진 촬영 금지는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여행작가로서 책에 넣을 사진 확보가 필수여서 사진 촬영을 막는 장소는 가혹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바티칸 시국 소재 시스티나 예배당은 가장 야속한 곳이다. 감시하는 사람들이 중간중간 배치돼 있어 무단 촬영하는 사람을 강제로 퇴장시킬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동방정교회 성당도 대부분 사진 촬영을 불허한다. 감시자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분위기가 매우 엄숙하므로 감히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 많다.
박물관과 미술관 중에도 사진 촬영을 금하는 곳이 더러 있는데,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그러하다. 그곳은 사진 촬영 불가이긴 하지만 입장료가 무료이니 뭐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어렵다.
어떤 곳은 사진 촬영을 폭넓게 허용하면서 특정 공간, 혹은 특별한 작품만 촬영을 못하게 하기도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리나 궁전은 ‘호박 방’이 촬영 금지이고, 베를린 노이에스 뮤지엄은 ‘네페르티티 흉상’이 촬영 금지이다. 중요한 곳만 촬영을 막으니 더욱 애가 탄다.
반면에 촬영 쿠폰을 구입한 사람에게 촬영을 허가하는 곳은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독일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갤러리는 놀이동산 종이 팔찌처럼 생긴 촬영 쿠폰을 판매한 다음, 그것이 없는 사람은 카메라를 꺼내 들지 못하도록 막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 경우 아예 촬영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고마웠다.
이렇게 여행하다 보면 사진 촬영 문제로 신경을 쓰게 되는데, 이탈리아 파도바에서도 그랬다.
파도바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보러 가는 도시이다. 고리대금업자였던 엔리오 스크로베니가 부친의 죄업을 씻기 위해 세웠다. 예배당 내부를 르네상스 초기 천재 화가 조토 디 본디네가 프레스코화로 장식해 아름답다.
여긴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조차 없다. 사전에 정보를 찾아보니 예배당 내부는 사진 촬영 불가라는 경험자 말이 있었다. 시스티나 예배당 같은 경우인가 보다 여기고 카메라 가방을 보관함에 넣은 다음 들어갔다.
하지만 웬걸. 막상 가 보니 사진 촬영에 대한 제재가 없었다. 함께 들어간 사람들도 자유롭게 촬영하고 있어 스마트폰으로 아쉬우나마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다만 카메라보다는 화질이 나쁘다 보니 아쉽고 속상했다.
파도바 두오모 옆에 위치한 세례당에서는 다른 일이 있었다. 두오모는 무료 입장인데, 세례당은 입장료가 3유로라고 했다. 입장료를 받는다는 건 볼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꺼이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과 벽 전체가 온통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들어오길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카메라를 꺼내 들고 보니, 맙소사, ‘촬영 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세례당 내부는 도저히 사진을 찍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직원이 하나뿐인 관람자인 나를 주시하고 있으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나는 늙수그레한 직원에게 내 간절함을 호소하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 “나는 여행작가이다. 이곳이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진이 꼭 필요하다. 사진 딱 한 장만 찍게 해 달라.”라는 말을 중언부언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거절당할 것 같아 ‘딱 한 장’을 강조하며 애타는 심정을 표정으로 어필했다. 그러자 날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못 본 척 해줄 테니 빨리 찍으라는 뜻 같았다.
진심을 다해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사진 한 장을 찍고 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가 아직 딴전을 피우는 걸 확인하고는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여러 번 눌러댔다.
딱 한 장만 찍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때 사진을 찍기 위해 간절히 애원했던 건 잘한 일 같다. 옛말에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하는데 내가 그 말을 증명한 셈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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