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이 칼럼은 신양란이라는 여행작가가 얼마나 멋진 여행을 했는지 늘어놓을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작가란 과분한 타이틀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얼마나 어리바리하게 돌아다니는지를 고백하려는 의도가 컸다. 오죽하면 칼럼 제목이 ‘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이겠는가. 여기에서는 ‘좌충우돌’에 방점이 찍힌다.
나도 남들처럼 세련되고 매끄럽게 세상을 주유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욕심은 욕심일 뿐, 말이 안 통하고 지혜가 부족하다 보니 억울한 일도 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하면서 고달픈 여행을 계속하는 신세이다.
이 칼럼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버스 티켓에 제대로 펀칭이 안 되어 120유로(우리 돈으로 18만 원)를 벌금으로 문 에피소드로 시작했다. 분명히 남편과 내 티켓 두 장을 펀칭 기계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 결함이었는지 둘 다 펀칭이 안 되어 억울하게 벌금을 뜯긴 사건이다.
지금 생각하면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볼로냐 투어는 제대로 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때는 볼로냐라는 도시에 만정이 떨어져 그 도시는 외면하고 주변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화풀이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사정으로 볼로냐에서 가 볼 만한 주변 도시을 물색했고, 산 마리노 공화국도 물망에 올랐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산 마리노 공화국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작은 나라다. 바티칸 시국과 모나코 공국 다음 가는 미니 국가라고 했다. 게다가 1243년에 공화정을 수립해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공화국이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여행 정보가 거의 없는 걸 보면 그곳에 딱히 볼 게 없는 듯 했지만 그래도 하루를 투자해 유서 깊은 한 나라를 샅샅이 둘러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 마리노 공화국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이때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산 마리노 공화국은 엄연한 독립 국가인데, 입국 시 여권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었다. 바티칸 시국과 모나코 공국은 들어갈 때 여권이 필요 없지만, 산 마리노 공화국도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워낙 이탈리아는 소매치기 걱정이 큰 나라라서 어지간하면 여권은 호텔에 두고 다니고 싶은데, 그렇다고 필요한 순간에 여권이 없어 낭패를 보는 건 더 큰 일 아닌가. 그래서 인터넷에서 산 마리노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그때만 해도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닌지 유용한 내용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해도 엄연한 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입국에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여권을 챙겼다. 나로서는 쉽게 갈 수 없는 나라 문 앞까지 갔다가 입국 거부돼 되돌아와야 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아서였다.
볼로냐에서 리미니까지 기차로 간 다음, 리미니에서 산 마리노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는 산 마리노 공화국 옛 도시 성문 앞에 우리를 내려줬고, 성문을 들어서는 데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입국 절차니 여권 검사니 하는 건 없었다는 뜻이다. 여권을 가져갈 건가 말 건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간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5유로(7500원)를 내면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준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생략했다. 지금 생각하면 5유로 아끼는 대신 기념 삼아 스탬프를 찍어올 걸 그랬나 싶다. 다시 갈 것 같지 않은 나라다 보니.
산 마리노 공화국은 전체 면적이 60㎢에 인구는 3만여 명이라고 하는데, 티타노 산에 자리잡은 성벽 안 옛 도시만 놓고 보자면 훨씬 작은 나라였다. 과연 하나의 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작은 마을이라고 하면 딱 맞을 곳이었다. 구석구석 다 보는 데도 반나절이면 충분할 정도였다.
비록 볼로냐에 대한 분노 때문에 찾게 된 곳이었지만, 산 마리노 공화국은 귀한 경험을 내게 주었다. 그렇게 작고 오래된 공화국을 언제 또 가 볼 수 있겠는가.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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