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내가 “삼촌 온대” 하면 아이는 신이 나서 “따개!”라고 외친다. ‘따개’가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이에게 삼촌은 ‘따개’가 되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 “엄마”밖에 없던 시절인데 어느 날 아이가 “따개”라고 했다. 소리 내는 방식도 희한했다. 목이 아주 건조한 듯, 쉰 듯한 이상한 목소리로 “따개”를 반복하며 돌아다녔다. 나도 따라서 말해 봤지만 아이는 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빠가 이 말을 가만히 듣더니 “난 네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알지” 하며 아이와 똑같이 이상한 목소리로 “따개” 성대모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때였다. 아이가 제 삼촌을 얼른 쳐다봤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이며 “따개!” 하고 대답하듯 외쳤다.
마치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은 삼촌이 처음이야’ 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둘은 열 번도 넘게 이 말을 주고받았다.
오빠는 아이가 이 단어를 말할 땐 숨을 내쉬는 게 아니라 들이마시며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그대로 하자 나도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누구보다 삼촌이 말하는 “따개”를 좋아했다. 그렇게 둘만의 특별한 인사말이 되었다.
이런 인사가 몇 달째 이어지니 오빠도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아이가 삼촌을 보자마자 “따개!”라고 인사하니, 오빠는 다소 근심스러운 투로 “이렇게 계속 ‘따개’만 말해도 되나?” 했다.
걱정이 왜 안 되겠는가. 나도 아이가 <ABC 노래>를 꽤 그럴듯하게 부를 때, “안녕이나 제대로 말해라” 하고 한탄이 나온다. “안녕”이란 말을 못하는 데다가, 누가 인사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엘리베이터에서 한 아주머니가 “안녕?” 말을 건넸지만, 늘 그렇듯이 아이는 로비를 표시한 ‘L’ 버튼만 쳐다보고 있었다. 혼자 알파벳 세상에 빠져서 “엘”이라 말할 뿐이었다.
아주머니는 멋쩍게 웃거나 “알파벳을 아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엘”이라 따라 말했다. 그때 나는 아이 반응을 똑똑히 보았다. 아이는 즉시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몸을 돌려 아주머니를 향했다. 고개를 높이 들어 아주머니 눈을, 아주 똑바로 응시했다. ‘나와 대화가 되는 사람이 오랜만에 나타났군요’ 하듯이.
아이는 예전에 길을 가다 제 삼촌과 비슷한 체격과 나이대 남성에게 다가가서 “따개”라고 말을 걸어보곤 했다. 당연히 “따개”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거나, 무심히 지나칠 뿐이었다. 아이도 그걸 받아주는 이가 없다는 걸 아는지, 더는 길 가는 이에게 “따개”라고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기에게 의미 있는 말소리를 찾지 못한 채 혼잣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개”는 아이가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재미를 느낀 첫 단어다. 그걸 계기로 “아빠”를 말했다. 삼촌 걱정이 무색하게, 이제는 “따개” 대신에 “삼암(삼촌)”이라 부른다. 나아가 “이인나(할머니)”, “떤땜미(선생님)” 하고 상대를 부르며 그들이 자신을 향해 “왜?”라고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아이가 되었다.
또 모를 일이다. “안녕”이란 말이 아이 마음에 의미를 갖게 되는 날이 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안녕” 하고 말을 건넬지도.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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