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 |저자: 쑥 | 빅피시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디자이너 강은영] 오랫동안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며 생긴 두려움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 탈진하고 소진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이들이 보는 나는 분명하고 선명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는 나는 언제나 흐릿하다. 그래서 스스로 알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인다.
프리랜서에게 불안은 필연일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단단히 지키며 살아가는 듯 보인다. 끊임없는 고민이 꼬리를 물며 튀어 오른다.
그의 글을 처음 접한 건 무력하게 누워 무표정한 얼굴로 숏폼 영상을 넘기던 어느 날이었다.
“나아가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
그 문장이 느닷없이 마음을 흔들었다. 흐려지고 흔들리고 있는 나에게, 그는 “너만 그런게 아니다”라고 무심한 듯 담담하지만 따스하게 말을 건넸다.
우연히 발견한 짧은 글과 그림은 내게 묘한 해방감과 큰 위안을 줬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
비어 있다는 건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무직이라면 세상 모든 직업이 내 것이 될 수 있고, 무지하다면 모든 지식이 내 것이 될 수 있다. 무명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다.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이 ‘무명’이다.
나는 나의 노력이 좋다.
뭉그적 거림 불안과 창피까지 모두 분투였다.
나아가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 (본문 21p)
일상의 불안과 극복의 언어로 채워진 위로에 흠칫 놀라고, 괜스레 마음이 뭉클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나와 다르면서도 어딘가 닮아있는 무명이. 작가가 느낀 위안은 읽는 이에게 전해지고, 다시 작가에게 전해진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다독여진 마음을 부여잡고 또르르 눈물 한 방울, 끄덕임 한 번. “우리는 흰 천을 가운데에 두고 공존한다”는 작가 말은 이를 잘 표현한다.
나를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고단하다. 흐릿한 나 자신일지라도 가끔은 그대로 두고, 느리더라도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를 인정하며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
흐릿한 자신을 견디는 방법을 찾지 못한 또 다른 무명에게, 내가 그러했듯 조금의 위안과 위로를 건네는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버티고 나아가다 보면 분명 나아가고자 하던 곳으로,
환한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만 자책하고 이만 아쉬워하고 일어나.
할 수 있는 걸 차근차근하자. (본문 65p)
흐릿해서는 안 되는 시기이지만, 나아가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음을 믿으며,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 되기를….
|강은영. 책을 최고로 많이 읽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는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지 않은 북디자이너. '표1'보다 '표4'를 좋아한다.
북디자이너 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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