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해외여행 하며 개 때문에 크게 놀란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이 칼럼 26번째 에피소드였던 태국 파타야에서 겪은 일이었다. 아침 일찍 혼자서 호텔 근처에 있는 ‘싼 프라품(미니 사당)’ 공장에 사진 찍으러 갔다가 덩치 큰 개들에 둘러싸여 큰 공포를 느꼈다.
태국 개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태국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아서인지 평소에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 않기 일쑤이다. 더러 어슬렁거리며 사람 주위를 맴돌더라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주는 일이 별로 없는데, 그날은 무슨 까닭인지 여러 마리가 나를 둘러싸고 으르렁대는 통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지만, 맨 손일 때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부터는 가급적 남의 나라 개와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다시 한번 개 때문에 간이 떨어질 뻔한 일이 생겼다. 튀르키예 파묵칼레에 갔을 때 호텔에서 겪은 일이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이 대부분인 튀르키예 사람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불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여행 팀 가이드였던 이는, 돼지고기를 튀르키예에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인근 나라인 그리스나 불가리아에 가서 사 온다고 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개고기도 먹지 않다. 돼지고기 같은 이유가 아니고 정서적으로 유럽에 가까운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개는 친구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한다.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도사견만큼 커다란 개가 유유자적하며 골목길을 배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줄을 매지도 않은 채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다니는데, 신기한 건 사납게 짖는 개가 없다는 점이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딱히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동네 개인데, 주민이 알아서 먹이를 챙겨주기 때문에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팔자 좋은 개인 셈이다.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으니 사나워질 이유가 없어서인지 도사견 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매우 순한 순둥이였다.
하지만 그런 튀르키예에서 태국과 같은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파묵칼레 호텔에서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후, 전날 밤에 온천욕을 즐긴 노천온천 사진을 찍기 위해 걷고 있을 때였다. 새벽 6시 30분 즈음이었는데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이라 주변이 어둑했고,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천온천 건너편에서 개 서너 마리가 격렬하게 짖으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맘 같아서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가고 싶은데, 그러면 더 공격적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두려움을 꾹 참고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그렇게 순하던 녀석들이 왜 갑자기 나를 향해 공격해 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워낙 덩치가 큰 녀석들이라 정말 무서웠다.
개가 코앞까지 달려왔을 때, 나는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낯선 타국 땅에서 개한테 짓찢기는 신세가 되는구나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녀석들은 순식간에 나를 밀치다시피 스쳐가며 더욱 사납게 짖어대는 게 아닌가. 녀석들의 공격 목표는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고양이였다.
혼비백산한 고양이가 멀찌감치 달아나자 개들은 다시 순둥이가 되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왔는데, 나는 이미 혼이 다 나간 상태라 녀석들을 귀여워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내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파묵칼레는 내게 석회봉의 신비스러운 장관이나 히에라폴리스의 스산한 풍경보다는 개 때문에 혼이 나간 경험이 강렬했던 도시로 남아버렸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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