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이틀 동안 아이에게 한 번도 웃어주지 못했다. 타성에 젖은 직장인처럼 아무 감정도 싣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웠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는 내내 잠만 잤다. 주말 동안 꼬박 시달린 탓도 있지만, 계절성 우울증인지도 모르겠다.
계절성 우울증은 특정 계절 변화에 따라 우울감이 발현한다. 여름철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가을과 겨울에 발생한다. 돌아보면 매년 11월이 시작될 무렵에 우울해지곤 했다.
올해는 이게 좀 늦어졌는데, 그 이유는 지난달 아이가 섭식에 큰 진전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구운 갈치를 받아먹더니 계란말이, 옥수수, 라면을 먹었다. 맨밥은 단 한 톨도 먹지 않았는데 갑자기 여러 숟가락을 받아먹었다.
나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이제 곧 죽으로 된 이유식을 끝내고 밥과 반찬으로 된 식사가 가능하겠다.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점심밥도 조금은 먹지 않을까. 그간 열량이라도 채워주기 위해 먹였던 약과나 양갱을 줄일 수 있겠구나. 외식도 가능하겠어!
섣부른 기대였다. 아이는 딱 2주일 정도 잘 먹는 듯하다가 다시 밥을 거부했다. 밥을 밀어내고 소리를 질렀다. 이럴 땐 끼니를 굶겨도 소용이 없다. 조금이라도 밥을 먹게 하려고 새 장난감을 꺼내고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주며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간식만 먹으려 하고 밥과 반찬을 내밀면 곧장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울었다.
나는 울컥 화가 나서 아이를 다그쳤다. 손에서 간식을 빼앗으며, 밥을 먹어야 간식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밥을 뱉으려 하면 손으로 입을 막아 다시 밀어 넣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도 고작 세 숟가락을 먹이지 못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억지로 먹이는 일이 불가함을 처절히 경험했으면서도 또 어리석은 짓을 했다. 아이에게 밥 먹이는 일도 넌더리가 났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그렇게 다그친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나는 왜 아이가 먹는 문제에 이토록 집착하는가. 한식을 고집하는 편견과 어떻게든 먹이려는 폭력성이 내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한바탕 화를 내고 난 뒤에는 모든 힘이 다 빠져 버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푹 자고 싶어 암막 커튼을 쳐 두었는데 커튼과 창 사이 작은 틈새로도 빛은 들어와서 방 안을 환히 밝혔다. 오전에 날리던 눈발이 어느새 멎고 화창한 날씨가 되어 있었다.
겨울에 발생하는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 감소가 주요한 요인이다. 그동안 아이가 외투 입기를 싫어하고 모자와 장갑을 거부한다는 핑계로 바깥 활동을 거의 안 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와 함께 모처럼 밖으로 나섰다. 그늘진 길은 얇은 빙판길이었으나 햇볕 닿은 길은 언제 눈이 내렸냐는 듯이 눈이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길을 걷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쳐다 보았다. 방금 전 집을 나서면서 외투를 입기 싫어하며 울었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눈으로. 아이는 콧잔등에 주름이 생기도록 웃어 보였다. 내 어둡고 차가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미소였다.
햇살이 얼마나 눈부신지는 오히려 차고 흐린 겨울날 문득 알게 된다. “엄마가 미안해.” 장갑을 끼지 않아 손이 시려운 아이 손을 꼭 잡으며 환히 웃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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