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지붕 뚫린 환율 석유화학‧철강‧이차전지‧항공 직격탄
원/달러 환율 2009년 이후 최고…수익성 악화 불가피
[마이데일리 = 황효원 기자] 원·달러 환율이 27일 1470원대로 치솟았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강 달러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시계 제로'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지난 24일까지 241거래일 평균 원달러 환율(주간 종가 기준)은 1363.09원이다.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돌파한 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394.97원 이후 26년 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의 현실화에 따른 '강달러' 현상에 12·3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 이후 촉발된 정국 불안이 맞물린 결과다.
환율은 기업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지표인 만큼 심리적 저항선으로 통하던 1400원대마저 뚫리고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자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긴장 태세로 돌입한 분위기다.
환율 상승은 일부 수출 기업에는 호재가 될수도 있다. 달러 가치가 올랐을 때 외국에 제품을 팔면 더 많은 원화를 벌어들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수입 원자재값 상승 부담으로 환차익 효과는 미미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이 이에 속한다.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강달러 추세가 장기화하면 시설 투자 및 장비·설비 반입 비용이 늘어 투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업체들도 미국에 배터리 공장 신·증설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 투자액 부담이 가중된다.
당장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정유·철강·식품 산업은 비상이다. 특히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산업은 철강이다. 철강사들은 철광석과 원료탄 등 원·부재료를 해외에서 수입해온다. 고환율은 원재료를 들여올 때부터 비용 부담이 높아져 원가 부담이 높아져 내년 수익성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글로벌 철강 수요 둔화와 중국산 철강의 저가 공세까지 이어지는 등 철강업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달러로 원유를 사 오는 정유 업계도 글로벌 경기와 환율 등과 연동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달러로 사들이고 있는데 대량으로 원유를 미리 사두고 몇 달 후 달러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결제 시점의 환율 상승분이 환자손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환율이 오르면 환자손이 증가하는 구조다. 통상 환율이 10원 오르면 정유업계가 부담하는 환차손은 1000억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에 민감한 항공 및 여행업계도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항공유와 항공기 대여료, 항공기 리스비 등 대부분의 비용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3분기 기준 순외화부채는 약 33억달러(4조8000억원 규모)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330억원의 외화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악재다.
비교적 고환율 수혜업종으로 꼽히는 국내 완성차 업계도 이 상황이 달갑지 않다. 이전에는 국내 생산 비중이 높아 원/달러 환율 상승 시 달러로 결제되는 외화 매출 덕분에 혜택을 받았지만, 외국 생산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지금은 강달러로 인한 비용 부담 증가 우려가 더 큰 상황이다. 환율 상승분 중 일부는 부품, 원자재 비용이나 현지 마케팅 비용 등으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환율 변동성 확대, 내수침체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차증권은 내년도 환율전망을 달러당 1370~1450원으로 제시하고 경기 하방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원화의 실질 가치를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이 10% 하락하면 대규모 기업집단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P)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산업연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수출 전략이 점차 가격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원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제품의 수출 가격 하락을 통한 매출 증대 등의 효과가 사라졌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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