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돌봄과 인권 |저자: 김영옥·류은숙 |코난북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정선영] 엄마와 나는 “각자 몸은 알아서 잘 관리하자”고 서로 말하곤 한다.
“엄마가 아프면 내가 나서서 간병을 못해. 알지? 나는 돈 벌어야지. 엄마 간병 하느라 둘 다 손가락 빨고 있을 순 없잖아? 대신 더 좋은 시설과 간병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더 열심히 벌 거야.”
그러고 보니 우리 말에는 ‘둘 다 아프다’는 가정이 없었다. 점점 나이가 들고 아픈 데가 하나둘 생기면서 불현듯 걱정이 앞섰다.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그나저나 병원비는 어쩌지.
인간은 취약하다. 지구상 다른 동물에 비해 제 발로 걷고 밥을 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 돌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고 누구나 하고 있는데, 돌봄은 왜 두려운가? 무엇이 돌봄을 값싸고 비루하고 외로운 일로 만드는가?’ 김영옥·류은숙의 <돌봄과 노동>은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본다.
이 책에 소개된 ‘강도영 씨 사건’을 살펴보자. 갓 성인이 된 강도영 씨는 공장 노동자인 50대 중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응급 수술을 했지만, 아버지는 온몸이 거의 마비되어 연명 장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은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10년 넘게 단둘이 산 터라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둘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20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는 거의 왕래가 없던 작은아버지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내주었다. 강씨는 120kg 고도비만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생활고가 극심해졌다. 가스와 전기 등이 차례로 끊겼다.
퇴원 얼마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를 테니 그 전까지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마라.” 8일 후, 강씨는 아버지 사망을 확인한다. 매체에는 ‘간병 살인’이라는 말로 보도됐다.
“아버지가 쓰러졌어도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있었다면, 돌봄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돌봄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돌봄 교육과 훈련이 교육에 통합되어 있었다면, 돌봄을 ‘모든’ 시민의 중요한 활동으로 의식하는 문화와 공통감각이 있었다면, 특히 자원이 없는 계층의 시민들이 돌봄 위기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시적, 부분적 정책이 아닌) 포괄적 보편적 복지 정책이 있었다면, 그는 아버지를 살해한 비정한 아들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책 81쪽)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를 읽으며 스스로도 되짚어본다. 얼마 전 일이다. 엄마가 다니던 동네 의원에서 큰 대학병원에 가보라 했다. 엄마는 15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후 주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 이번엔 췌장 쪽이 좀 이상하다 했다.
나도 최근 몇 달째 몸이 좋지 않았다. 툭하면 몸살을 앓았고, 공단 건강 검진 후 부인과 쪽 재검사 요망이라는 결과지를 받아안은 참이었다.
다행히도 검사 결과, 엄마와 나는 큰 병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아픈 사람이 ‘민폐가 되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병원비 때문에 누군가에게 손 벌릴 일도,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고 닥칠 수 있는 일이란 실체적 두려움은 떨칠 수 없었다.
이 책 <돌봄과 인권>은 말한다. ‘돌봄은 인권이란 틀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자 책임으로서의 행위’이며 ‘인간으로서 마땅한 대접을 받는 일’이라고.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북에디터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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