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마이데일리 = 이보라 기자] 국내 증시가 부진에 빠지면서 미국주식 투자자(서학개미)가 급증했다. 서학개미들이 국내 투자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속화하고 있다. 해외투자 자금은 위기 때마다 국내로 환류하면서 방파제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환류 가능성도 낮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 미국 주식 불패론…해외 투자금 고공행진
서학개미들이 주가 등락에 관계없이 미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미국 주식이 꾸준히 우상향을 그리면서 ‘불패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대외금융자산은 9778억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2분기 말(8585억달러)보다 1194억달러가량 늘어난 수준으로 최고치를 새로 썼다. 순대외금융자산은 거주자의 해외 투자인 대외금융자산에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인 대외금융부채를 제외한 값이다.
순대외금융자산이 크게 늘어난 데는 서학개미들이 크게 기여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주식 보관 금액은 1121억달러로 집계됐다. 2023년 말(680억달러) 대비 64.8%나 불어났다.
서학개미들은 미국 주식이 장기적으로 우상향을 나타내자 미국 증시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주식에 투자하면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결국엔 더 오른다는 믿음이 생긴 상황”이라며 “미국 기업들이 탄탄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나타내면서 그 결과가 주가에 투영된 것”이라고 했다.
◆ 과거 위기때 ‘안전망’ 역할 톡톡
통상적으로 해외 투자금이 늘어나면 원 달러 환율이 올라갈 때 국내로 되돌아오면서 환율 안전망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해외 주식을 팔고 원화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어나 환율을 낮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은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와타나베 부인이란 일본의 개인 외화 투자자를 뜻하는 말로 일본 엔화를 저리로 대출받아 해외 고금리 국가의 금융 상품에 투자한다. 엔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면 엔화를 빌린 투자자들이 환손실을 피하기 위해 상환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나타난다.
실제로 1995년 한신 대지진 발생 당시 일본 해외투자자들은 해외 단기 채권과 국외 주식을 대거 매도하면서 엔화 강세를 이끌어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때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현상이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2008년 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달러 선물과 ‘FX(Foreign Exchange) 마진거래 등으로 달러를 사들인 바 있다. 이후 해외투자 자금의 상당 규모가 국내로 되돌아오면서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한 바 있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가속화…환류 가능성↓
다만 현재로서는 과거와 같이 위기때 해외 투자자금이 국내로 환류될 가능성이 낮다. 수익률이 낮은 국내 증시를 떠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해외투자 자금 증가가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국내 증시는 계속 부진에 빠지는 것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투자 자본 유출이 이어지면 성장이 둔화되고 국내 주식이 매력을 잃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투자의 해외유출이 경기 회복 지연 및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향후에도 국내 투자의 해외유출이 지속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실물 경기 회복 지연과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 약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외투자 자금이 늘면서 외환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국 자본이동분석팀 관계자는 “과거 대외리스크 확대 시 외국인 국내 주식 자금은 해외로 유출됐지만 거주자 해외주식 자금은 자금 환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코로나19 위기 시 오히려 순투자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bor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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