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화제
[마이데일리 = 박로사 기자] 넷플릭스 새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감독 김원석)는 꿈을 가진 소녀와 소년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저 아름답기만 한 내용은 아니다. 웃다가도 눈물이 나고, 응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따듯한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애순은 시인을 꿈꾸는 문학소녀다. 주변에선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핀잔뿐이지만,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는 요망진 반항아다.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는 평생 물질을 하다 '숨병'에 걸려버렸다. 죽음을 직감한 광례는 딸에게 식모살이하지 말고, 나가 살라고 당부한다. 애순이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질도 가르치지 않았던 그다.
엄마는 떠났지만, 애순에겐 소꿉친구 관식이 있다. 관식이는 생선장수의 아들이자 유망한 운동선수다. 노스탤지어 모르는 놈이랑은 결혼 안 한다는 애순 앞에서 시를 통째로 외우고, 애순이 애 둘 딸린 남자에게 시집갈 위기에 처하자 몸으로 막아서는 순정남이다.
서로의 첫사랑인 두 사람에게 행복만 있을 줄 알았건만, 애순은 시집살이로 몸 성할 날이 없다. 시인을 꿈꾸며 책을 놓지 않던 애순의 손엔 이제 책 대신 주걱이 들려 있다. 애순은 결심한다. 자식에게만은 다른 인생을 선물하기로.
"시대가 빌런인 드라마"라는 김원석 감독의 말처럼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 제주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담아낸다. 남녀가 겸상을 하지 않고,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면 구박을 받았던 시절이다. "제주에서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라는 대사가 아프게 다가온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발버둥 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애순의 모습은 먹먹함을 안긴다. 오애순 역을 맡은 아이유는 천진난만한 얼굴부터 처연한 얼굴까지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조모가 자식을 잠녀(潛女)로 만들려고 하자 제사상을 뒤엎고 "내 딸은 나처럼 안 살려요" 외치는 아이유의 낯선 얼굴이 반갑다. "그동안 봤던 아이유의 모든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김 감독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에 판타지가 있다면 양관식 역의 박보검이다. 박보검은 어린시절부터 애순의 곁을 지키는 관식으로 완벽히 분한다. 애순을 향해 바다 같은 애정을 쏟아내는 관식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안도감이 든다.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이를 졸졸 쫓아다니던 택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는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와 섬세한 연출력을 가진 '나의 아저씨'의 김원석 감독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시대상을 반영한 프로덕션까지 더해져 몰입도를 높인다. 마을 하나를 옮겨온 듯한 세트장으로 600억 제작비가 아깝지만은 않은 수작이다.
애순이와 관식이의 일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풀어내는 '폭싹 속았수다'는 이제 막 여름에 접어들었다. "조부모, 부모 세대에 대한 헌사, 그리고 자녀 세대에 대한 응원가 같은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는 김원석 감독의 바람이 그대로 이뤄질 듯하다.
박로사 기자 terarosa@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