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프로 스포츠는 무엇으로 사는가? 관중의 힘이다. 관중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내는 돈으로 프로 스포츠는 생존한다.
프로 스포츠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어 이익을 내려는 사업. 그 사람들이 직접 경기나 방송 중계를 많이 봐야 돈을 번다. 그래야 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아주 간단한 생존 방식. 스포츠를 즐기지 않거나 관심 없는 국민이 세금 등을 통해 프로 스포츠를 도울 이유가 없다.
이른바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어떤 정책·서비스도 직접 혜택(이익)을 받는 사람이 그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고속도로 이용자가 통행료를 내고,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이치를 프로 스포츠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프로 스포츠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수익자 부담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스포츠계는 물론 관중들도 그 원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스포츠 관중들 사이에서 벌어진 “관중의 힘”에 대한 논의는 미국이 왜 프로 스포츠 강대국인지를 알게 해 준다. 한국 프로 스포츠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교훈을 준다.
쿠퍼 플래그는 듀크대 1학년. 올해 남자 프로농구(NBA) 신인 선발 1순위 지명이 확실하다. 이미 여자 프로농구(WNBA) 1순위에 뽑힌 페이지 뷰커스는 코네티컷대 졸업생. 올해 미국대학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똑같은 1순위지만 뷰커스는 4년 34만8,000 달러(4억7,884만 원)에 계약했다. 플래그는 4년 6,270만 달러(863억 원)의 신인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플래그의 계약금이 무려 180배 많다.
플래그가 본격 프로에서 뛰면 1주일 동안 버는 돈이 뷰커스가 4년 동안 버는 것보다 많게 된다. 도대체 말이 되는가? 그러나 엄연한 현실. 프로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에 대해 미국인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냉정하게, 당연하다고 반응했다.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쓸 의향이 있는 지가 문제다. 그들이 남자 선수들에게 지출하는 만큼 여자 선수들에게도 지출하기 시작하면, 연봉도 그만큼 평등해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생존·발전은 오로지 관중들에게 달려 있다는 뜻. “절대 맞는 말이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관중들이 돈을 쓰지 않는 스포츠는 프로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스포츠 애호가는 프로 스포츠가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면 그냥 “취미”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가혹한 분석도 했다: “WNBA는 해마다 NBA로부터 6,000만 달러(825억6,000만 원)씩 지원을 받는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체는 고액 임금을 줄 수 없다. WNBA는 사업체가 아니라 자선사업에 가깝다. 국세청 규정에 따라 ‘취미 단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
돈을 벌지 못하는 프로 구단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 한국의 대부분 프로 구단들에 대 놓고 하는 쓴소리 같다.
■미국에선 “기업·지자체가 구단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NBA의 2025년 수입이 130억 달러(17조8,880억 원)가량. 이러니 선수들에게 큰돈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NBA 최고연봉은 스테픈 커리의 5,600만 달러(770억5,600만 원).
몇 개 리그가 적자로 접은 뒤 태어난 WNBA는 26년 동안 계속 수천만 달러씩 적자만 냈다. 관중들이 많이 오지 않기 때문. WNBA 최고는 캘시 미첼 25만 달러(3억4,400만 원). 커리의 1/200 수준이다. NBA가 “자선금”을 주지 않으면 이마저도 줄 수 없다.
남자 농구뿐 아니다. 미식축구, 프로야구 등의 연봉은 천문학 숫자. 그 많은 돈을 누가 감당하는가? 다름 아닌 관중들.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미국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세금으로, 어마어마한 빚을 진 공기업 등 기업들이 소비자들 돈으로 프로 구단을 운영하거나 적자를 메꿔주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관중들은 기업·지자체가 구단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축구장 잔디가 형편없다고 구장 관리하는 지자체나 회사를 비난하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구단이 높은 임대료를 주고 좋은 시설의 경기장을 빌릴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많은 연봉을 줄 수 있도록 비싼 입장료를 낸다. 체육관 등에서 각종 상품을 사고 음식을 사 먹는다. 열심히 중계를 본다. 자신들이 즐기는 운동에 대한 당연한 투자다. 수익자 부담 원칙.
모든 구단은 사업체이므로 어디서도 자선금을 받지 않는다. 오로지 관중들 부담 덕택으로 구단을 꾸려간다.
과연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위해 얼마나 부담하는가? 입장료를 보자.
NBA 정규 시즌 전체 구단 평균 입장권 가격은 320달러(44만 원). 24년 NBA 최종 결승전 평균 가격은 무려 4,150달러(571만 원).
가장 인기 있다는 ‘LA 레이커스’의 정규 시즌 평균 입장권 가격은 474달러. 최종 결승에 진출하면 3,000~6,000달러로 크게 오른다.
미식축구(NFL)는 미국 스포츠의 으뜸 부자. 가장 인기 높은 ‘댈러스 카우보이’ 의 정규 시즌 평균 입장권값은 279달러. 플레이오프 평균은 600~1,200달러.
25년 ‘슈퍼볼’의 경우 평균 8,600달러(1,183만 원)였다. 가장 비싼 자리는 6만9,180달러(9,568만 원). 그런데도 7만6,000여 명이 입장했다.
프로 야구(MLB) 24년 ‘월드 시리즈’ 평균 가격은 2,388달러(328만 원). ‘뉴욕 양키스’의 정규 시즌 평균 입장권값은 105달러.
주요 프로 스포츠 가운데 가장 인기가 떨어진다는 축구(MLS)도 리오넬 메시 효과 덕분에 정규 시즌 가격이 150~250달러.
■ 한국 프로 스포츠, 구단은 자생력 높이고 관중도 냉정해져야
프로 스포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 스포츠도 주요 종목 입장권 가격은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
올해 미식축구 최종 결승 오하이오 주립대와 노트르담대의 가장 싼 입장권이 1,899달러(261만 원). 가장 비싼 좌석은 3,327달러(458만 원). 프리미엄 좌석은 6,000달러에서 2만달러 이상이었다.
미국 대학 미식축구는 10만 관중 경기장을 가진 대학이 8개. 10만7,600여명 수용 능력의 미시건대 24년 8경기 평균 관중 수는 11만명. 경기마다 관중들이 차고도 넘쳤다. 8개 대학 모두 마찬가지.
이렇게 열광 관중들의 아낌없는 부담으로 대학 미식축구도 큰돈을 번다. 오하이오 주립의 올해 수입은 2억8,000만 달러(3,852억 8,000만 원). 많은 돈을 버는 몇 개 주요 종목들이 대학 전체 20~30개 운동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프로 등 각종 스포츠는 입장료 외에 중계료가 큰 수입원. 팬들이 열심히 시청하니 중계료도 높을 수밖에 없다. 한 해 중계권 수익은 NFL 125억 달러(,17조2,000억 원) NBA 74억 달러(10조1,824억 원), MLB 55억 달러(7조5,680억 원), MLS 2억5,000만 달러(3,440억 원) 등이다.
한국의 관중들이 부담하는 액수는 미국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 국가대표 축구 경기 입장료는 3만~12만 원. 프로 배구는 구단과 좌석 종류에 따라 다르나 보통 지정석은 1만원부터 7만원, 일반석은 7,000원부터 2만5,000원까지다. 관중 수는 배구의 경우 경기 당 2,000여 명 수준.
일일이 예를 들면 부끄러운 숫자만 나올 뿐이다. 그런데도 자생력 없는 한국 프로 스포츠의 연봉은 터무니없이 높다. 이제 관중들도 냉정해져야 한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스스로 쓰는 돈을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투자하지 않는다고 구단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현실에 맞게 연봉을 낮추는 등 몸집을 줄이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 없는 국민에게 부담 지워서는 안 된다. 그래야 스포츠가 정상이 된다. 생존을 넘어 발전할 수 있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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