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이카루스의 몰락[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어떤 형태든 들려줄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두가지 뿐이다. 모든 것을 얻는 캐릭터와 모든 것을 잃는 캐릭터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전자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이고, 후자는 ‘나이트메어 앨리’다. 그는 ‘괴물 속 인간, 인간 속 괴물’의 테마를 즐겨 다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괴물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판타지가 없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1947년 윌리엄 린제이 그레셤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자신이 운명을 개척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운명에 끌려가는 남자를 아찔한 전락의 이야기로 담아냈다.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멀리 떠나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지옥을 경험하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아른거린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공에 목마르고 욕망으로 가득 찬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은 절박한 상황에서 유랑극단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토니 콜렛),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 부부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기술을 배운다. 전기를 흡수하는 소녀 몰리(루니 마라)와 뉴욕 상류층을 상대로 독심술을 이용해 돈을 벌던 스탠턴은 어느날 그의 위험한 욕망을 꿰뚫어본 심리학자 릴리스 박사(케이트 블란쳇)와 함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선택의 길로 들어선다. 영화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시작해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194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을 다룬다. 대공황 이후 절망의 시절을 보내던 한 남자는 존재론적 두려움 속에 야망을 키우다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한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스탠턴에겐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 친아버지는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알코올 중독자였다. 또 다른 아버지는 독심술사 피트다. 유사 아버지인 셈인데, 그는 스탠턴에게 독심술을 사용할 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욕망에 눈이 먼 스탠턴은 피트를 비롯해 몰리, 지나의 지속적인 경고를 외면한다. 스탠턴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를 상징한다. 뛰어난 건축가이자 발명왕인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이카로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 미궁을 탈출했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피트는 유사 아들인 스탠턴의 미래를 걱정하는 다이달로스다.

에녹=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전작에서 기괴하고 유니크한 크리처를 많이 등장시켰는데, 이 영화에선 크리처 대신에 ‘에녹’이라는 이름의 아기 형상이 나온다. 서커스단의 주인 클렘(윌럼 더포)의 수집품 가운데 자신을 품은 어머니를 죽이고 나왔다는 사산아 '에녹'이 있었다. 스탠턴이 클렘을 처음 만날 때, 에녹을 발견한다. 이 순간, 마치 에녹이 스탠턴을 쳐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에녹은 스탠턴의 죄의식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영화적 장치다. 스탠턴이 뉴욕에서 온갖 고생을 겪고 천신만고 끝에 다시 서커스단에 돌아왔을 때도 에녹과 눈이 마주친다. 불행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스탠턴은 결국 더 비참한 신세로 제자리에 돌아올 운명이었다.

눈=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걸작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에서 손바닥에 눈이 달린 괴물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에서 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다. 이 영화에서도 유동적인 눈이 나온다. 생닭을 먹고 사는 ‘기인’이 도망치자, 스탠턴은 그를 잡기 위해 유령의 집에 들어간다(유령의 집은 다이달로스의 미궁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엔 수많은 눈이 붙어있는 공간이 있다. 여기서 ‘눈’은 스탠턴의 음울한 미래를 상징한다. 어떤 운명이 스탠턴의 행동을 모두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원형의 공간을 통과하는 모습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무리 도망쳐 봤자,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

세 번의 살인, 세 명의 여인=그의 영화에서 ‘3’은 중요하다. ‘판의 미로’ 부제에도 ‘세 개의 열쇠’가 들어있다. 스탠턴은 모두 세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처음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두 번째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세 번째는 운명을 시험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힌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세 명의 여인이 있다. 몰리는 스탠턴의 미래를 걱정하며, 제발 그릇된 욕망에서 빠져나오라고 애원한다(몰리가 주로 빨간색 옷을 입는 것도 흥미롭다.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일라이자도 괴생명체와 사랑을 나눈 이후 빨간색 옷, 머리띠, 구두를 착용했다). 지나 역시 타로 카드를 통해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비극이 닥칠 수 있다고 일러준다. 마지막 여인 릴리스 박사는 스탠턴의 욕망을 이용한다.

오만=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만(hubris)에는 항상 보복(네메시스)이 따른다고 했다. 로버트 무어는 “신들은 항상 지나치게 오만해지는 자, 요구가 많은 자, 혹은 허세가 많은 자를 벌했다”고 지적했다. 이카루스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리고 지나치게 높에 올라가려는 오만을 부리다 스스로 파멸했다. 스탠턴 역시 오만한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돈에 눈이 멀어 지나친 사기 행각을 벌이다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네메시스 여신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응징한다. 오만에 휩싸이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괴물처럼 변한 스탠턴은 눈이 가려진 채 자기 스스로에게 해를 가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오만한 자는 복수 당한다.”

[사진 = 디즈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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