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계약:파주,책,도시’ 비움의 공간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어느 건축가는, “건축은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김종신, 정다운 감독의 ‘위대한 계약:파주,책,도시’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후반 뜻있는 출판인들이 ‘북한산 결의’를 통해 번듯한 출판 공간을 마련하기로 의기투합한 이후 건축가들과 힘을 합쳐 현재의 파주출판도시가 완성되기 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유신과 군부독재시대를 거치면서 탄압을 받았던 출판인들이 문화강국의 대의를 위해 세운 파주출판도시는 ‘공동선의 실천’이라는 일관된 가치 아래 벽돌을 손수 만들어 하나 둘씩 쌓아올리듯 오랜 기간에 걸쳐 축조됐다. 여기, 지나간 시간 속에는 ‘비움의 철학’이 깔려 있다.

승효상 건축가는 “건물을 짓기 전에 어디를 비울지를 먼저 결정했다”고 말했다. 출판도시 바로 옆에 있는 습지를 보존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철새가 날아들고 희귀종이 서식하는 출판도시는 생태도시로 발돋움했다. 건물을 높이 지으려는 욕망이 왜 없었겠는가. 설계비를 더 많이 받고 싶은 욕심이 왜 안들었겠는가. 그러나 출판인과 건축가는 한발 씩 양보해 건축문화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과 시대정신의 이름 아래 ‘위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공동체의 열망’이 비움의 철학을 바탕으로 실현되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 비움 속에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졌다. 두 감독은 전작 ‘이타미 준의 바다’에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삶을 조명했다. 그가 설계하고 지은 제주도의 수풍석 미술관, 방주교회를 비롯해 일본의 석채의 교회, 먹의 공간 등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건축에 융화시킨 작품이었다. 1998년 도쿄에 ‘먹의 공간’을 만들 때는 원래 있던 벚나무 두 그루를 벨 수 없어서 설계를 변경했다. 이타미 준은 그곳을 대나무로 지었는데, 딸이 “갈라지고 색이 변할텐데 왜 대나무를 쓰세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바로 그걸 의도한거야. 그게 시간의 맛이지”라고 답했다. 20년 역사의 파주출판도시도 시간의 맛을 느끼며 서서히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 비움은 또한 미래를 예비하고 있다. 처음엔 출판사만 입주했지만, 이제 영화사 등 영상 관련 회사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1기 코디테이터로 참여한 플로리안 베이겔은 “미래를 위해 결말을 열어두었으며 건물 디자인의 가변성을 허용했다. 이것을 긍정적 불확정성‘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폐쇄적으로 닫힌 공간이 아니라 개방성으로 활짝 열린 공간이 파주출판도시다. 이제, 이곳은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더 많은 출판, 영화, 예술인이 모여들고, 더 많은 시민이 찾아오는 꿈의 도시로 변화하는 중이다.

파주출판도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제목의 쉼표는 당신이 머무를 자리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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