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민스미트’를 삼켰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연합군과 추축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교두보 시칠리아를 두고 팽팽한 대립을 펼친다. 추축군 독일의 위세가 상당해 시칠리아에는 이미 추축군 병력 23만 명이 주둔해 있던 상황. 연합군은 해군 정보장교 이웬 몬태규(콜린 퍼스)와 찰스 첨리(매튜 맥퍼딘)를 주축으로 나치를 속일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한다. 관건은 연합군이 시칠리아가 아니라 그리스를 침공할 것이라고 히틀러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독일이 시칠리아의 병력을 빼내 그리스로 이동시키면, 시칠리아 상륙이 쉬워진다. 문제는 히틀러가 연합군의 시칠리아 공격을 불 보듯 뻔 하게 알고 있다는 것. 처칠도 “바보가 아니고서는 누구라도 다음 목표가 시칠리아라는 것쯤을 알 것”라고 말했다. 과연 몬태규와 첨리는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존 매든 감독의 ‘민스민트 작전’은 치밀하고 짜릿한 전쟁 첩보영화다. 제목의 민스민트(mincemeat)는 잘게 썬 사과, 건포도, 기름, 향료 등을 섞은 영국 전통 음식을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엔 고기가 들어있지 않다. 고기가 없는데 정작 음식 이름에는 고기가 들어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미끼’의 의미다. 영국은 독일군을 그리스로 유도하기 위해 가상의 ‘육군 제12군’을 만들어 시리아에서 기동훈련을 진행하고 전차와 장갑차 수를 부풀렸으며 그리스 간의 교신량 늘렸다. 반대로 튀니지에 본부를 둔 시칠리아 상륙부대는 통신량 줄이고 육로로 통신 주고 받았다. ‘바클레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히틀러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이것이 사체기만작전인 ‘민스미트 작전’이다.

몬태규와 첨리는 런던에서 노숙자의 사체를 구해 가상의 해병대 소령 ‘윌리엄 마틴’을 만들었다. 항공기 추락 사고를 겪은 마틴이 바다에 떠밀려 자연스럽게 중립국인 스페인 해안에 닿도록 하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다. 몬태규는 스페인의 프랑코가 히틀러와 친했기 때문에 마틴이 품고 있는 가짜 서신(연합군이 그리스를 침공한다는 내용)을 히틀러에게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었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위험한 작전이었다. 나치가 마틴을 실존인물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몬태규 등은 이를 위해 아버지편지, 연애편지, 은행 대출금 독촉장, 런던 극장의 티켓, 해군 클럽 숙박권, 가톨릭 신자로 보이도록 은 십자가와 성 크리스토퍼 메달 들을 소지품에 넣었다.

존 매든 감독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미술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 영화는 젊은 셰익스피어(조셉 피네스)가 원래 희극을 쓰려고 했으나, 바이올라(기네스 펠트로)를 만나게 되면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까 스토리텔러(셰익스피어)가 가상의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스미트 작전’도 비슷하다. 몬태규, 첨리, 진 레슬리(켈리 맥도날드)는 각자의 아이디어로 윌리엄 마틴을 완벽하게 창조한 뒤 그에게 스토리를 부여했다. 당시 스페인 군의관은 마틴의 십자가를 보고 천주교 신자일 것이라고 생각해 부검을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야기는 그만큼 사람을 감쪽같이 속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작가다. 일단, 몬태규는 존 버커의 ‘39계단’을 좋아한다. 극 초반부, 아들에게 읽혀주는 책도 ‘39계단’이다. 감독은 클로즈업으로 책을 강조한다. '39계단'은 스파이 스릴러 장르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았다. 존 버커도 영국 정보부에서 일했다. 비밀침투를 통해 영국에 예기치 않은 전쟁을 선포하려는 독일의 음모를 다룬 작품으로, 이중 스파이들이 등장하는데 ‘민스미트 작전’과도 맥이 통한다. 진은 마틴의 여자친구 ‘팸’이라는 가상인물을 만든다. 특히 실존인물 이안 플레밍(쟈니 플린)이 등장해 이 작전을 글로 쓰고 후대에 남기는 역할을 맡는다. 제임스 본드의 상관 M, 비밀무기 제조자 Q의 존재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흡사 ‘007 시리즈’의 전사를 다룬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스토리를 추구한다. 인류가 터득한 생존기술이다. 스토리를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야기의 힘은 위력적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의 잔학상을 폭로해 노예지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이야기에 과도하게 심취하면 몰락의 길을 걷는다. 히틀러가 지녔던 순수 혈통 민족에 대한 그릇된 이상도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에 의해 키워졌다. 이야기에 심취했던 히틀러는 몬태규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마틴 소령의 사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히틀러는 ‘민스민트’를 삼켰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승운도 연합군으로 넘어갔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사진 = 조이앤시네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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