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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훈 기자의 인디스But구디스] "홍대 마녀입니다"
오지은의 CD를 처음 손에 쥔 것은 이 독특한 수식어로 기억되는 2009년 늦은 봄의 어느 따뜻한 날이었다. 긴 머리에 청순한 외양이 클로즈업된 재킷을 보고 당시 홍대 신을 정복하다시피 했던 '홍대 여신'이 또 하나 추가되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때였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홍대 앞에서 정말 간만에 만나는 진솔하고 섬세한 여성 아티스트의 결과물임을 깨달았고 2년 전 작곡, 녹음, 홍보, 판매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 내면서 산고의 첫 앨범을 내놓았던 그녀임을 알아차렸다. 다시 2년이 지나 어젯밤 '숯팩'을 하고 자서 여느 때보다 피부가 탱탱해진 오지은과 소담스런 대화에 빠져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3집 작업에 돌입했나.
아니, 아직 3집 곡 작업은 하지 않았다. 오지은과 늑대들 활동이 끝나고 준비해서 내년 쯤 낼 생각이다. 5월에 페스티벌에 많이 나갈 예정이라 4월에는 쉬면서 목 관리 좀 하려 한다.
프로필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건 역시 2006년 유재하가요제 동상이다. 당시 26살이었는데 군대 부담 없는 여자 뮤지션으로서 한참 늦은 나이였다.
우선 학교 문제로 2년간 일본에 가 있어서 남들 군대 가 있는만큼 시간을 보냈다(웃음). 사실 일본에 음악을 관두려고 간 거였다. 중2 겨울방학 때 처음 밴드를 했는데 스쿨밴드가 아니라 73-74년생 한참 위 오빠들과 했다. 레드제플린 같은 음악을 카피하고 성인들과 함께 하다보니 눈 높이가 높아졌고 대학교 들어와서 어줍잖게 밴드하는 게 사이비 같고 부담스러웠다. 할 말이 있을 때 하지 않으면 어줍잖을 것 같더라. 그러다 24살 때 처음으로 남자친구한테 차였는데 음악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다. 그 때부터 미친듯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재하가요제 동상을 받으면서 데뷔의 길로 들어섰다.
내 음악들을 남들에게 한 번 평가받고 싶었다. 본선진출 만으로도 만족했는데 동상을 받아 너무 기뻤다. 후에 들었는데 당시 김민기 선생님이 '쟤는 평생 음악을 하겠다'고 하셨다더라. '잘했다'는 말보다 더 기뻤다.
첫 앨범을 온전히 혼자 만들었다. 레이블에 들어가려고 데모를 돌리거나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한 번쯤은 완전히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레이블에 들어가면 다른 색깔이 들어갈 것 같았고 데모를 돌리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데, 나이도 많은데 시간이 아까웠다. 물론 레이블에 들어가야 완성도가 더 높아지긴 하겠지만 혼자 끝까지 가고 싶었다. 팀 프로젝트가 아닌 온전히 내 손으로 끝맺고 싶었던 거다.
1인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뭐였나.
기자님이 기사 쓰고 인쇄한 뒤 배달까지 한다고 생각해 봐라. 또 '멋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색안경을 낀 시각도 있었다. '실력이 안 되니 레이블에 못 들어갔지' 이런 식으로. 혼자 다 했다는 말에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그걸 뒤집고 음악이 좋게 다가가야 하니 몇 배로 음악이 가치있어야 한다. 첫번째 트랙을 심장소리와 피아노소리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게 뭐야'하며 들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한다면 반반이라고 할 거다. 가혹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행착오가 많고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회사가 있으면 포장이나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앨범 재킷도 굉장히 불친절했고. 순전히 음악만으로 1만장을 팔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농산물 직거래한 농민이 이런 기분일까. 덕분에 먹고 살만해졌고 집에 효녀됐다(웃음).
그렇다면 이듬해 해피로봇레코드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뭔가.
혼자 한 번 해 봤으니 이젠 같이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1집은 주변에서 정말 많이 도와줘서 진짜 돈 안들고 만들었는데 언제 또 돈을 다 모아서 하나 막막했고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기자님이 이제 기사만 쓰게 된 거다. 해피로봇에서는 '혼자 잘 하시는 분이 왜?'라고 반문하시더만(웃음).
레이블에 소속되니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
1집은 어쿠스틱이 좋기도 했지만 돈을 아끼려는 의도가 있었다. 돈 걱정 안해도 되는 게 가장 좋았지. 1집 재킷은 흑백이고 2집은 컬러다. 의도적인 거다. 1집과 2집은 동전의 양면 같다. 1집이 A라면 2집은 A'다. 악기도 많이 들어가고 규모도 커지고 수많은 뮤지션들이 도와줬지만 회사에 들어간다고 걱정했던 팬들이 소포모어 징크스 없다고 칭찬해 준 덕이 여기 있었다. 풍부한 색깔도 낼 수 있었고. 혼자 일본 가서 마스터링까지 다 하고 처음 회사에 들려줬다. '좋네'하고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1집과 2집이 그렇게 양면의 동전이라면 오지은과 늑대들은 작정하고 신나는 음악을 하자는 생각이 컸는데.
2집 활동이 끝나고 일본 홋카이도로 2주 정도 여행을 갔다. 1집은 안 알려져서 오해받을 일이 없었는데 2집에 '홍대 마녀'라고 알려지면서 편견에 부딪혔다. 인터뷰를 30-40개 했는데 성격 좋아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 여행 갈 때 CD 2장만 들고 갔는데 피치카토 파이브와 로베르타 플랙이었다. 문득 피치카토 파이브의 라이브 음반을 듣고 있는데 관객들이 너무 신나하는 거다. 나도 관객들과 신나는 공연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어두운 노래들로만 공연을 하면 너무 힘들다. 관객에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안기고 나는 껍질만 남은 느낌이다. 신기하게 여행 갔다온 뒤 곡들이 술술 써지더라.
하지만 2집과는 달리 오지은과 늑대들 앨범에는 반감을 가진 팬들도 꽤 있었던 걸로 안다.
1집에서 직접 소통해서 팬이 된 분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아직도 혼자만 알고 싶다는 마니아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공연도 밝게 하면 싫어하신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같은 노래 부른 뒤 농담이라도 던지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여자친구한테 치마만 입으라고 강요하는 거나 다름없다. 바지를 입어도 나인건 변함없는데. '넌 나의 귀여운'은 호불호가 갈릴 음악이 아니다. 외국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록인데 우리 록 팬들은 특수한 집단이 듣는 음악으로 규정돼 특별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수식어가 필요하니까 충분히 이해하는데 난 인터뷰마다 오해를 풀러 다녔다. '마녀'라는데 왜 '인생론'처럼 밝은 노래를 하냐는 편견이 생겨 '아이라인이 진해서 마녀일뿐'이라고 농담하면서 해명했다. '홍대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언론에 유행하면서 홍대가 무슨 신전이 됐는데 그런 것도 회사들의 흐름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신수진(요조)양 같은 분들도 해명하고 싶을 거다. 난 그런 거와 관계없다고 생각하니.
영향 받은 뮤지션에 관한 질문은 너무 많이 받았을테니 가장 먼저 산 음반이 뭐였나. 또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뮤지션의 음반은.
사실 그런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가 내가 이름도 잘 모르는 뮤지션에 영향 받았다고 단언하는 기사도 봤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봐 주니 고맙다(웃음). 강수지였다. 가장 먼저 '죽이네'라고 생각한 가수는 김완선이었다. 외국에서는 쥬얼 1집과 앨라니스 모리셋 1집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 여성 솔로가수네(웃음). 부모님이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듣는 환경이었다. 집에 기타도 있었다. 천혜의 환경이었지. 그런데 기타를 치겠다고 하니까 손목을 자르겠다고 하시더라. 음악을 하는 건 상관없는데 여자애가 남자들하고 밴드 한다고 어울리는 게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착실하게 대학 가면 너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하시더라. 비틀즈가 박스세트를 구입해서 가장 많지 않을까. 우상은 너바나인데 딱 빠져들 때쯤 커트 코베인이 죽어버려서. 아, 엘라 피츠제럴드와 카펜터즈도 있다. 멜로딕한 노래를 좋아해서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같은 노래가 나온 것 같다.
오지은의 음악이 주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가 가사다.
가사부터 써 두고 곡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사랑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비중이 크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는 오히려 연애 1달 돼서 행복했던 순간에 그 반대를 생각하며 쓴 거다. 어쩔 수 없이 꼬인 양면성이랄까(웃음). '잊었지 뭐야'는 이별하고 1달 돼서 성수인가 동호대교를 지나면서 쓴 거다. 그 사람 얼굴만 볼 때 보이지도 않던 야경이 너무 아름다운 거다. 아무래도 실연당했을 때 쓴 게 많다. 어느날 밤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는데 너무 차갑게 받아서 당장 커피숍 들어가서 뚝딱 쓴 적도 있다.
3집을 비롯해서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1-2집이 냄비가 끓어 넘치는데 주워담아 만든 음악이라면 지금은 약불로 졸여 만든 음악이다. 1-2집은 2007년, 2008년의 일기장이었다. 앨범 콘셉트가 없는 이유기도 한데 3집은 전혀 다를 것 같다. 지난해에 '홋카이도 보통열차'라는 에세이를 냈는데 잡지에 기고도 하고 글 쓰는데 자신이 조금은 생겨 3집 내기 전에 에세이집을 하나 더 낼 것 같다. 아, 배철수 선생님이 또 '오지은씨는 음악을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아요'라고 하실까봐 걱정이다(웃음).
[사진제공 = 해피로봇레코드]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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