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화통화 톤으로)친구 몇 놈이랑 강촌으로 야영 간적이 있었거든, 고삐리때 말이야. 그날이 길일이었는지, 바로 옆 텐트에 여학생들이 있더라고...국악예고 애들. 자연스럽게 뭉쳤지. 어린놈들이 쪼로록 둘러앉아 아주 유치한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그 아이들이 창을 부르더라고. 그 노련미가 아주....거 뭐냐, 퍼런 밤하늘의 샛노란 달처럼 그 자체가 판타지고 충격이었지만 말이야, 생경함? 경외감?...뭐, 그런 거에 더 당황했다는 거 아니냐. 노래하고, 춤추고, 뭐, 그런 인생길을 중삐리때부터 스스로 정한 아이들이잖냐. 대단하지 않냐? 그때 내 머릿속엔 '뭐하고 사냐?'는 존재하지 않은 질문이었으니까. 덕분에 그 당시 무쟈게 고민했잖냐. 거 있잖아,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냐?' '내가 잘하는 건 또 뭐냐?' 뭐, 그런 걸로 그때 답이 딱 만들어졌으니까, 덕분에 '방목된 개, 돼지의 시대'를 접을 수 있었던 거고. 왜사냐 싶을 때 마다 그때 답들을 생각하면 정리가 깔끔하게 돼. 뭐, 개인적인 추억이라 빌려줄 수도 없고 말이야... 하여튼... 기운 내자고. 지금이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상, 영화'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떠오른, 필자의 실화를 재구성한 뜬금없는 글이다. 역사적 사실 위에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이니, 그것에 걸맞게 필자의 에피소드도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풀었어야 '간디'나게 모양새가 맞았겠지만 왠지, '자아성찰'류의 추억만 떠올랐다. 그 이유가 뭘까?
'가진 거라곤, 쇠망치 밖에 없다면 모든 문제가 다 못대가리로 보일걸?'
'If you only have a hammer, you tend to see every problem as a nail.'
- 에이브러햄 매슬로-
시작부터 영화 '범죄와의 전쟁'는 오래된 보도영상자료와 가공의 상황을 섞어가며 90년대로 관객들을 숨 가쁘게 초대하는데, 관객들은 닮은 듯, 다른 듯, 애매한 그때의 시대상 중, 정치와 조폭의 세계를 한 세트로 만날 수 있는 '범죄와의 전쟁'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안에서 국가적 범죄소탕작전으로 긴급 체포된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자의 정체가 애매하다. 조폭의 거물인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조폭도 아닌 것이, 잡아들인 검사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깡패 아입니다. 공무원출신입니다' 능글맞게도, 같은 공무원가족이니 좀 봐달라는 최익현에게 그러나 돌아온 건, 열 받은 검사의 발길질. '내가 깡패라면 깡패야. 이 자식 정체가 뭐야? 건달도 아닌게, 반달이냐?' 씩씩대는 검사만큼 관객도 궁금해질 즈음, 휘리릭- 관객들은 다시 최익현의 80년대로 초대되는데, 여전히 능글맞은 과거의 최익현은 온갖 편법으로 생활고를 해결해나가는 말단 비리세관원으로, 직접 접할 기회야 흔하지는 않아도 다른 형태로는 종종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의 모습이다. 능글능글, 기웃기웃, 이리저리 틈만 나면 자기 주머니 채우기 바빴던 우리의 이웃은 그러나, 해고될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것과 동시에 위험하지만 한방 터트릴 기회를 맞이한다. 히로뽕 밀반입을 중간에 가로챈 것이다. 그리고 겁도 없이, 우리의 이웃은 조폭의 세계를 기웃거리더니, 흔히 만나기 힘든 사람이 되려고 작정을 한다. 여기까지 재미있는 도입부다.
영화의 장르야, 편의상 구분 된 것이라,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도입부에서 만큼은 하드보일드 톤으로 더 무게를 잡던가, 아니면 블랙 코미디로 더 몰아붙여서 가이드라인을 선명하게 제시했어야 했다. 왜냐? 보는 내내 좀 헷갈렸거든. 좋기는 한데, 확실하게 뭐가 좋은지 모르는 애매한 느낌말이다. 그런데, 최익현이라는 실존 애국지사의 이름이 영화의 비리공무원의 이름과 같다든가, 특정 종파를 아무렇지도 않게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블랙코미디장르의 의지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입부의 하드보일드냄새를 좀 더 강하게 그리고 길게 풍겼어야했다. 그래야 냉혹한 비장함 속에서, 관객들은 그 이후에 담긴 깨알같은 리얼리티의 재미를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일테면,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차안의 혈투가 그렇고, '장기하와 얼굴'들이 재현한 '풍문으로 들었소'가 흐르는 장면이 그렇다. 더 빛나는 최고의 명장면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알쏭달쏭하지만 의미있는 많은 장면들 중에 대표적인 건 역시, 감독이 일부러 비워놓은 마지막 장면이다. '응 뭐지? 뭘 말 하는 거지?'라는 관객의 질문에 영화 밖에서 감독은 아버지세대들에 대한 연민이라고 답을 했다. 필자는 8-90년대를 되돌아보면, 그저 신경질적이고 시끄러운 설거지 소리만 들린다. 그것도, 차분하고 듣기 좋은 도마위의 칼질소리와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려야 할 때 말이다. 권력자들이 들고 있는 무기가 협상이 필요없는 총칼이니, 광풍처럼 몰아쳤던 어지러운 그 시절에, 자식들은 보다나은 미래를 위해, 차갑게 불타올랐고, 아버지들은 보다 안전한 현실을 위해, 위기의 순간 속에서 그저 날아다니는 기회를 잡으려 정신없이 동분서주했다. 우리의 아버지이자, 영화 속의 최익현의 모습이다.
권력이던, 주먹이던, 있는 자들이 그 무시무시한 무기로 자기 앞가림 하는 틈바구니에서 최익현이 할 수 있는 건 혈연을 총 동원한 기회잡기와 이리저리 눈알 굴려 여기저기 기생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들고 있던 무기가 총알없는 권총이니 공갈 밖에 더 치겠는가.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을 휘두르는 거고, 주먹을 가진 자는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도 저도 없는 자들은 뭘 휘둘렀겠는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매슬로교수의 '인간의 5단계 욕구' 라는 게 있다. 생리적, 안전, 사회적, 그리고 자식의 성공을 바라보며 존경욕구까지 실현하고는 멍-하게 지쳐있는 최익현을 부르는 그 소리. '대부님,' 필자는 왜 그 소리가 이제 그만 총알없는 공갈권총은 버리고 자아실현 욕구까지 마저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라는 응원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걸까? 영화가 열어놓은 마지막 장면에서 필자가 선택한 결론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연민으로는 부족한 모양새다.
김석민은 독립영화 감독으로 현재 제주도에 정착해 제주유리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준비하며 공력을 쌓는 중이다. dolmean@hotmail.com
[영화 '범죄와의 전쟁'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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