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 옛날 옛적,
1976년, 추적추적 비가 오는 겨울초저녁. 모래내시장 끝자락에, '은좌극장'과 쌍벽을 이루는, '진주문방구'가 있다.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한 그 곳에서 요정을 닮은 척추장애인 주인아저씨가, (꼽추라는 단어를 감히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위엄과 품위 넘치는 몸짓으로, 커다란 박스 하나를 주섬주섬 꺼낸다. '아카데미과학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그렇다. 김꽃두레와 민식이가 타고 다니는 그 할리다.
그것을 받아 쥔, 남가좌동에서 머리통이 제일 큰 '큰머리초딩'. 자기 머리통보다 더 큰 그 '프라모델'박스를 들고, 집으로 달려가지만 머리통 무게 때문인지, 벅차오르는 기쁨 탓인지 뒤뚱뒤뚱 불안하다. 결국, 제 발에 걸려 철푸덕 자빠지는 꼴을 보니, 흥분한 게 틀림없다. 아직도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며 할리의 엔진을 조립하는 큰머리초딩. 그때, 띵동- 아뿔싸, 간섭 쟁이 아버지가 퇴근했다. "뭐하냐? 공부안하고?"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할리 조립에 집중하는 큰머리초딩. 어느새 옆에 붙어서 같이 할리를 조립하는 간섭쟁이 아버지.
"다락에 가서 도루코하고 닛빠 가져와라. 아니다 공구통 다 가져와라." 조수로 밀려난 큰머리초딩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추적추적 겨울비는 아직도 내리고, 드디어 할리는 아버지 손에 완성이 되었다. 그 큰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큰머리초딩. 그 꼴을 본 아버지가 만족감을 애써 숨기며 미안해한다. 슬그머니 안방으로 도망가는 간섭쟁이 아버지. 뭔 놈의 겨울비는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고....
실제로 있었던 가슴 아픈 필자의 추억이 떠오른 건, 순전히 영화 '휴고' 때문이다.
2. 어르신, 이러시면 안 됩니다요.
곧, 아카데미시상식이 열린다. 올해는 미대통령선거(대한민국을 필두로 세계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흥미로운 한해가 되리라.)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유별나게 보수적인 작품들이 후보로 많이 올라왔는데, 그 와중에 '휴고'는 '아티스트'와 함께 영화사의 추억을 더듬는 내용으로 무려 11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으니, 한국영화의 애정을 잠시 미루고 지난시간에 이어 외화를 한 번 더 짚고 넘어가려 한다. 더구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이 아니던가.
영화'휴고'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3D의 효과를 자랑하며 눈이 날리는 파리상공을 거쳐 기차역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 들어가, 수많은 인파들을 헤집고 기차역의 커다란 시계 안에 숨어있는 꼬마아이 휴고(아사 버터필드)를 용케 찾아낸다. 사람들의 무관심 덕분에 시계 속 비밀공간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숙식하고 있는 이 아이는 지금, 무언가를 훔치려 작정했다. 장난감이다. 기차역 안에 마련 된 조그만 장난감가게의 주인할배가 깜박 졸고 있는 틈을 노려 무사히 '자동쥐새끼장난감'을 낚아챈 순간, 늙은 장난감가게 주인할배 손에 붙잡히는 '휴고' . 드디어 좀도둑을 잡게 된 주인할배는 처절한 응징을 단행하려는 순간, 휴고의 수첩을 발견하곤, 어쩐 일인지 수첩만 압수하고 좀도둑을 그냥 놓아준다.
주인할배는 그 수첩 때문에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떠올라 우울해지고, 그저 장난감이 좋아서가 아니라 뭔가를 고칠 부품수급을 위해 좀도둑질을 해왔던 휴고는 부품수급은커녕, 아빠의 유품인 수첩까지 뺏기니 우울해지고, 이래저래 영화는 경쾌하게 흐르던 분위기를 버리고 일순, 급 우울해진다. 그 뿐인가? 황홀한 판타지의 세계로 초대 될 줄 알던 관객들은 낚였다는 걸, 슬슬 눈치 채면서 우울해 지기 시작하니, 도입부부터 이 일을 어쩌랴 싶다.
그래서 재미없다? 아니다 재미있다. 다만, 영화를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말이다. 초기 영화제작현장과 함께 뤼미에르, 버스트 키튼, 해롤드 로이드, 찰리 채플린을 만날 수 있으며 컴퓨터그래픽과 고전적인 트릭을 함께 활용한 편집의 깨알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고, 화려하게 진화한 마틴 스콜세지 특유의 카메라 워킹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연민의 시선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재밌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인가? 아니다. 재밌으면 뭐하나? 소수의 '아는 놈'만 즐기는데. 필자는 그렇게 느꼈다.
영화의 원작은 브라이언 셀즈닉의 아동소설 '위고카브레'다. 작가의 그림으로 가득 찬 이 놀라운 소설은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달세계 여행'으로 유명한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res1861~1938)'의 실제 일화들과 작가의 상상력을 엮어, 어린독자들이 추리를 통해, 상투적이지만 올바른 동화적 교훈과 함께 재미있는 영화사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풀어놓았다.
지적이며 감성적인 나름, 훌륭한 영화입문서인 이 책은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구체적인 일러스트로 영화제작의 초기과정을 훌륭하게 제공하니, 탐내지 않는 영화제작자가 있었을까? 틀림없이 영화화 될 운명의 이 원작을 어찌어찌 받아 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어린(?) 딸과 함께 읽으며 자기가 꼭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린관객들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라고 본다. 누구보다 영화광인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조상에 가까운 영화선배 멜리에스에게 이 영화를 헌정 하겠다는 그 순간, 삐끗해져 버린 것 이다. 만약에 이 영화가 이번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큰상을 쓸어간다면, '지들만의 잔치'라며 틀림없이 조롱할 복잡한 필자의 심상이야 그냥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래서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만, 좋은 원작 하나를, 그리고 그 원작을 이토록 탄탄하게 제작할 여건을 판단 하나로 날려먹었다는 것에서는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은 순 없다. 아깝다.
다시 말하지만, 원작은 아동소설이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를 어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어른들이 보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즐길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감상 후기는 이래야 맞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보다보니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영화인들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어요.' '영화와 함께 꿈꾸고 시퍼욤.' '아이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해요. 말려야하나요?' 등등.. 하지만, '판타지가 뭐이래?' '영화를 하는 저로서는 가슴 뭉클한 감동임돠.'등등이 주류를 이룰 것 같으니 괜히 남일 같지 않다. 필자도 뭉클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임돠.
(뱀발)
원래는 '아이스 에이지'의 '크리스 웨지'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가 교체된 것이라고 하니 이유가 뭐였을까? 그냥 감독교체 없이 그대로 갔으면 결과는 어땠을까? 그러면 필자의 평은 달라졌을까? 하필이면 휴고가 훔치려했던 자동장난감이 왜 쥐새끼였을까?
김석민은 독립영화 감독으로 현재 제주도에 정착해 제주 유리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준비하며 공력을 쌓는 중이다. dolmean@hotmail.com
[사진 = 영화 '휴고' 스틸컷]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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